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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융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노자와 융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저자 : 이부영
출판사 : 한길사
출판년 : 2012
ISBN : 9788935662081

책소개

융의 분석학적 관점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들여다본다!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노자와 융』. 노자의 ≪도덕경≫을 융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책으로, 노자의 통찰이 우리 마음의 심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찰한다. 동양사상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융은 그의 학설의 핵심인 정신의 전체성, 즉 ‘자기’의 상징을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노자의 ‘도’를 제시하였으며,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원리를 동양사상에서 찾아내고자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노자의 말들을 풀이하고 동시에 노자의 입장에서 융의 생각을 조명한다. 그리하여 동과 서를 아우르는 정신의 전체상을 편견 없이 풀어내고 있다. 이 고찰의 과정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의 심층을 다루고 치료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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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분석심리학자 이부영,
노자의 『도덕경』을 통해 동서양의 원초적 상징을 해석한다


“융의 상징적 해석을 통해 노자의 말은 우리의 마음이 된다. 그리하여 노자와 융은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뛰어넘는 인간의 마음의 전체성, 노자가 ‘도’라 불렀고 융이 ‘자기’라고 부른, 자율적 객체정신 속에서 만난다. 이 책에서 주로 ‘도’와 ‘자기’의 여러 모습과 작용을 되풀이해 언급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노자의 『도덕경』을 융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노자의 통찰이 우리 마음의 심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찰한 저서. 그 고찰의 과정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의 심층을 다루고 치료하는 사람들에게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두 사람은 시대적으로 2천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살다갔는데, 융은 서양 전통정신의 토대 위에서 경험을 통해 학설을 세운 사람이고, 노자는 고대 아시아 대륙에서 나와 동아시아인의 심성에 깊은 정신적 인각을 남긴 사상가이다. 이 둘의 사상을 한 권의 책에 녹여내기 위해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노자의 말들을 풀이하고 동시에 노자의 입장에서 융의 생각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동과 서를 아우르는 정신의 전체상을 편견 없이 해석해내고 있다.

저자 이부영은 ‘분석심리학의 탐구’ 3부작인 『그림자』『아니마와 아니무스』『자기와 자기실현』에서 노자와 공자 등 동양정신과 분석심리학의 문제를 지면의 일부에 할애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초 우리의 전통사상을 분석심리학에 투영해낸『한국의 샤머니즘과 분석심리학』에 이어 이번에는 동양고전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인 『도덕경』을 분석심리학에 투사해 또 한 권의 저서를 펴냈다.

노자의 ‘도’와 융의 ‘자기’

전일의 체험은 우리 서유럽의 신비가,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서,
중국의 도 철학에서, 일본의 선에서 발견된다.
‘자기’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 하는 것은 심리학적 입장에서는 무관한 것이고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 또한 무관하다. 심리적인 사실성으로 족하다.
실제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융,『전이의 심리학』)

동양사상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은 그의 학설의 핵심인 정신의 전체성, 즉 ‘자기’(Selbst)의 상징을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동양의 유례로서 노자의 ‘도’(道)를 제시하였다.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통튼 전체정신이며, 자기원형이란 전체정신으로 마음을 통일할 수 있는 원초적이며 선험적인 인간 조건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전체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것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자아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는 전체정신의 중심이다. 이와 같은 전체정신의 중심, 혹은 의식을 심화시켜 전체정신을 실현케 하는 무의식의 핵심적인 원동력은 꿈과 신화와 종교적 표상에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 표현된다.
‘도’와 노자에 관한 논평과 언급은 융의 많은 저작에서 발견된다. 융은 노자사상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도’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다. 융은 그가 인용한 『도덕경』에 관해 비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의 관심은 자기의 생각과 노자를 비교하여 같고 다름을 가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원초적이며 보편적 원리를 동양사상에서 찾아내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양 대극합일의 정신
인간의 정신은 대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인간심성에 대한 융의 기본학설이다. 대극 없는 정신활동은 없다. 사랑과 미움,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남성과 여성, 내향과 외향, 전진과 후진 등 수많은 대극이 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대극 간의 긴장과 갈등에 휘말린다. 행동할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마음의 두 대극 가운데 하나가 성공적으로 억압되었다고 믿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눌렸던 한 극이 자신을 뒤엎어서 전혀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리기도 한다. 정신적 대극은 우리 정신의 전체를 구성하고 있기에 마음대로 양극 가운데 하나만을 취하고 다른 하나를 없애려 한다면 그것은 없어지지 않고 무의식에 억압된 채 머물러 있다가 힘을 키워 의식을 사로잡게 된다.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심리적 성향, 또는 요소는 감정적 강도로 표현되는 에너지 값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값의 차이로 인하여 대극 간의 교류가 활발해진다. 이렇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낙차(落差)의 관념이 이미 『도덕경』에 언급되어 있는 점을 발견하고 융은 매우 감탄한 일이 있다. 그런데 대극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없으면 사람은 대극 간의 갈등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대극 상호간의 수평적인 이행(移行)이 거듭될 것이다. 그런데 융은 경험을 통하여 대극을 통합하는 기능이 무의식에 존재함을 발견하고 이를 초월적 기능이라고 이름 하였는데, 이로써 대극긴장이 해소될 뿐 아니라 개체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융은 이와 같은 대극의 문제와 그 합일의 정신이 일찍이 동양사상에서 꽃을 피워왔음을 깊이 공감해 지적한 바 있다.

세상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줄로만 알지만 이는 보기 흉할 뿐이요,
착한 것만이 착한 줄 알지만 이는 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되며,
높고 낮음은 서로 바뀌고, 소리와 울림은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무위로 일하고, 말없이 가르치니,
만물이 일어나되 말하지 않으며, 생겨나되 소유하지 않으며,
일은 하되 뽐내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지되 머물지 않는다.
머물지 않으니, 그래서 떠나지도 않는다. (『도덕경』제2장)

인간의 삶과 죽음
『도덕경』에서는 삶과 죽음에 관해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공자는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고 하였는데 노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제자리를 잃지 않는 이는 오래 가고
(육신이) 죽더라도 (도를) 잃지 않는다면
그것이 진정한 장수이다. (『도덕경』제33장)

노자의 이 짤막한 글에서 우리는 노자가 육체의 영생을 바라지 않고 도의 영원함을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존재가 마땅히 머물러야 할 자리’를 각자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서 찾으려는 사람도 있으나 ‘본래의 자기자리’라는 해석에 입각하여 생각하면 그것은 융이 말하고 각 개인의 전체정신으로서의 개성, 혹은 자기에 알맞은 삶과 관념상 많은 공통점이 있다. 직업의 선택이나 사회적 역할의 수행이 각자의 개성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논의할 수는 있으나 그 또는 그녀의 개성은 이를 넘어 그 개체의 삶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각자가 자기자신과 일치된 삶을 살면 오래 간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위에 제시한 제33장의 마지막 구절은 도가 육신의 죽음을 넘어 영원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와 함께 있음이 바로 오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도와 함께 있음’ ‘도를 잃지 않음’은 분석심리학적 용어로 ‘자기’와 함께 있고 자아의 자기와의 관계를 잃지 않음을 말한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자기’를 시간?공간 속의 세속적 인간, 자아에 대해서 ‘무시간적 인간’이라고 한 융의 말이다. 또한 자신의 꿈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무의식의 투사가 아닌가 생각했다는 융의 언급이다.

도는 외롭다!
세상 사람들은 아주 밝으나 나만 홀로 어둡고
사람들은 살피고 따지는데 나만 홀로 몽매하구나.
바다와 같이 잠잠하다가, 바람처럼 쉼 없이 나부끼도다.
사람들은 모두 하는 게 있는데, 나만 홀로 어리석고 고루하구나.
나는 홀로 사람들과 달라 생명의 어머니를 귀히 여긴다. (『도덕경』제20장)

위에서 보인 노자의 고독, 혹은 도의 경지에 있는 자의 고독을 자세히 음미하면 단순한 한탄과 외로움의 푸념이 아니고 이런 감정적 표현을 통하여 도의 본체를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노자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융은 이에 대해 덧붙였다.
“노자가 ‘모든 사람들이 분명한데 다만 나만 홀로 몽매하구나’ 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의 고령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높은 통찰을 지닌 사람의 본보기였다. 그는 가치와 무가치를 보았고 이를 겪었으며 인생의 마지막에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그 인식할 수 없는 영원한 의미 속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하며, 아무도 모르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 역사상의 개척자들이 느꼈을 고독이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
인간 정신생활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의식이라고 융은 말한다. 무의식은 자아의식과 그 발전의 원천이며 뿌리이다. 의식은 발전하기 위해서 외부적인 것에 일방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밖에 있는 집단의 법칙과 요구에 적응하는 나머지 사람은 자기자신의 뿌리를 잊고 근본에서 멀어진다. 이때 우리는 신경증적 해리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내면의 무의식과 관계를 형성하고 내면을 살필 필요가 있다. 무의식과의 관계를 다시 맺음으로써 전체정신이 되는 것, 이것을 강조하는 융의 태도와 바깥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 속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삶의 원천인 도에서 양식을 구하고자 하는 노자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다만 융은 노자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현대를 사는 서구인답게 삶의 다양성과 그 충만함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기의 생각을 알리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자기를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누더기 속에 자기를 숨기지도 않았다. 창조에 필수적인 고독을 인간본성의 탐구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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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책을 펴내면서
머리말

제1장 용의 '자기'와 노자의 도(道)
제2장 도란 무엇인가 - 도의 본체
제3장 선과 악
제4장 무위(無爲)
제5장 도의 여러 상징
제6장 아름다움과 삶의 즐거움
제7장 도시성의 원리와 도
제8장 성인(聖人) - 정신치료자의 자세와 관련하여
제9장 몸
제10장 삶과 죽음
제11장 도는 외롭다

참고문헌
영문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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