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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의 발견 (이병일 시집)
옆구리의 발견 (이병일 시집)
저자 : 이병일
출판사 : 창비
출판년 : 2012
ISBN : 9788936423506

책소개

수평적 관계론과 함께 수직적 깊이를 향한 역동적 열망을 끊임없이 동반하는 시편들!

이병일 시인의 첫 번째 시집『옆구리의 발견』. 2007년 문학수첩신인상에 ‘가뭄’ 외 4편이,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견딜 수 없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가 등단 5년 만에 내놓은 시집이다. 삶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저자가 고단한 삶을 사랑가는 이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의 무게를 오롯이 품어 안으면서 생을 견디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삼의 다른 형식을 투시하고 탐색해나가는 열정을 담아낸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멸의 이미지들을 감싸 안으며 삶의 단면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존재의 기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사유, 사물의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섬세한 감성으로 신선한 감동을 자아내는 ‘격장’, ‘아직 봄은’, ‘명랑한 남극’, ‘씨앗의 발견’, ‘꽃잠’, ‘어떤 평화’, ‘담의 공백’, ‘서정적으로’, ‘소문’ 등의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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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아름다운 비유로 생동하는 생의 감각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달한 생명 감각이 숨쉬는 생기발랄한 언어와 일상의 세목을 재현하는 정밀한 묘사가 어우러진 단정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온 이병일 시인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이 출간되었다. 등단 5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사물의 세미한 움직임을 간취하면서도 존재의 시원적 원리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유성호, 해설) 심미적이고 감각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준다. 소멸의 이미지들을 감싸안으며 삶의 단면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존재의 기원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사유, 사물의 마음까지도 읽어내는 섬세한 감성이 신선한 감동을 자아낸다.

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 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 한낮의 하품을 마저 놓는다. 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격장' 부분)

이병일 시인은 가파른 현실을 초월하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오롯이 품어 안으면서 생을 견디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다른 형식을 투시하고 탐색해나가는 열정을 보여준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발이 닿지 않는” 생의 심연을 바라보며 “아프도록 멀리 있는 병이 씻기”('우물')도록 삶의 근원적 치유를 꿈꾸는 시인은 “세상의 옆구리에 박히는 붉은 심장의 박동을 세어보기 위해”('옆구리의 발견') 격장을 이루어가면서, “뼈 울음 같은 고락”('빙폭')의 “파동이 있는 곳을 응시”('파랑의 먼 곳으로부터')함으로써 맑고 심원한 세계로 가닿고자 한다.

아직 봄은 저 바깥에 머물고 있었던 거다/나무는 봄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피안을 끌고 들어가는 꽃송이와 새순을 토해낸 거다/그러니까 이제 봄비 그친 직후, 꽃나무를 보는 것은 멀리하자/밀려나오는 꽃순 소리는 새파란 음악이 되었다/그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꿈이었다, 생이 가려웠으나/당신은 아름다움 끝에 있는 폐허를 좋아했다/새순과 꽃송이엔 흉터가 자라고 있었다/바깥이 바깥 안에 든 다른 생으로 몸을 바꿨다/오늘 당신은 낮에 나온 꽃자리를 보며 생을 찾아간다/그러나 흰 영구차의 매연이 눈부시게 빛날 때처럼/이 바깥 세계에 있는 세상은 세상 아닌 듯 투명해졌다('아직 봄은' 전문)

삶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시인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건넨다. “거름자리를 파헤치는 갈퀴 발의 노동”('닭발이 없었다면')의 신성함과 “제 생을 위태롭게 허공에 매”단 “일용직 거미인간들”('사소한 기록')의 삶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눈길은 나아가 “칠흑 밤마다 많은 맨발들이 숙명으로 국경을 넘고 넘는”('꽃제비') 탈북자들의 세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영원히 공중에 발을 담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누가 표식해놓을 때, 갑자기 병신이 될까봐 공중의 바닥이 무서워졌다 우리는 추락의 아름다움이 비명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명 따위는 지르지 않았다 이것은 발이 푹, 꺼진 후 일목요연하게 얻은 건설현장의 교훈이었다//오늘도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하루를 보았다, 멍하니 세상을 쏘아보다가, 순간의 망치질로 내 손등을 내리쳤다 눈물이 찔끔, 쏟아졌다 그때 사소한 일상은 또 수렁처럼 깊어지고, 나는 또 언제 씹힐지 모르는 철근의 아가리 속에서 저녁을 맞는다('사소한 기록' 부분)

남다른 감각으로 “자연 속에서 생명의 촉수를 발견하는”('시인의 말') 시인은 “인공수정으로만 목숨이 이루어지는 세계”('인공수정')와 “사람을 짐승으로 길들이는 천개의 낭떠러지”('안녕, 서울이여!')가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비정한 도시 문명을 비판의 눈길로 꿰뚫어본다. “나는 나무속의 미끄럽고 촉촉한 언어를 찾는 고고학자”('기린의 취향')라고 자임하며 삶의 근원적인 생태학을 그려가는 시인은 “활자들의 숲이 천개의 도서관을 만들어가”('활엽수림 도서관')는 과정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치욕과/비참한 황홀과 반짝이는 비애가”('올랭피아') 숨어 있음을 알아챈다.

햇살 좋은 날씨가 많아질수록 건물들은 쑥쑥 자란다/저만치 펌프카는 철근 속옷만 걸친 건물들에게/말랑말랑한 콘크리트 반죽을 짱짱하게 입히기 시작한다/(…)/건물들은 식물의 욕망을 가지고 산다/첨단기술이 두더지처럼 기나긴 지하 세계를 뚫고 나와/지상 위에 정기적으로 거대한 아파트를 심고 있을 때/나는 종신보험을 들고 나온 초식동물의 꿈을 꾼다/건물의 유일한 외부인 골목 속에서 식물 냄새가 맡아진다/그러나 많은 나무들은 더이상 꽃과 열매를 맺지 않는다/오늘도 강남역 사거리는 식물성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식물성의 발견' 부분)

이병일 시인은 “아름다움 끝에 있는 폐허”('아직 봄은')를 열망하면서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자라나는 생의 기미”('공포의 축제')를 엿보는 생성의 시인이다. “우아한 말 속에는/숨 가쁘게 썩는 부패의 힘이 숨어 빛”('어느 똥통 지옥')나는 삶의 아이러니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존재론적 기원을 상상하는 쪽으로 나아가, “흙내음 가득 배긴” 어머니의 발뒤꿈치를 “도루코로 깎아”('세숫대야에 뜬 별빛')내던 아름다운 시간들과 “자신을 서정적으로 만든 저 너머의 세계”('서정적으로')까지 애틋한 눈길로 멀리멀리 내다본다.

오일마다 어김없이 열리는 관촌 장날/오늘도 아홉시 버스로 장에 나와/병원 들러 영양주사 한대 맞고/소약국 들러 위장약 짓고/농협 들러 막내아들 대학등록금 부치고/시장 들러 생태 두어마리 사고/쇠고기 한근 끊은 일흔다섯살의 아버지,/볼일 다보고 볕 좋은 정류장에 앉아/졸린 눈으로 오후 세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기력조차 쇠잔해진 그림자가 꾸벅꾸벅 존다('어떤 평화' 전문)

이병일은 최근 5·18문학상을 수상하며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젊고 진지하고 상당히 세련된 시인”(정희성, 추천사)이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남다른 사유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기원을 탐색해가는 그가 “감각의 파동과 삶의 기원을 동시에 노래하는 시인”(유성호, 해설)으로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견지하며 더욱 참신한 목소리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나갈 것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격장」이라는 그의 시를 보며 나는 ‘무언가 담장을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프로스트의 한 구절을 생각했다. 이병일은 그러나 “저만치 매화나무 꽃눈이 지켜봐도 돌풍과 작달비에 끄떡없는 돌담을 쌓는다”. 그것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담장을 쌓는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이는 신념에 찬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매화나무와 감나무의 경계선을 후회도 없이 쌓아올린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이웃하는 것이 ‘격장(隔墻)’이라고 할 때, 될 수 있으면 이를 허물라고 하는 것이 시인답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인 태도는 아니다. 그는 이웃과의 관계라는 측면보다 담장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며 시인은 그 위에 “수박만한 태양”도 올려보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도 올려보고 “담장 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 줄기도 올려본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또 돌담을 쌓아 격장을 이룰 것이므로 나는 차라리 그것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것일까? 아니면 시인은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이 그러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의 이러한 시적 태도를 현실주의라고 해야 할까, 심미주의라고 해야 할까. 그는 젊고 진지하고 상당히 세련된 시인이다. 섣불리 그를 한마디 말로 규정하려 들지 말자.
정희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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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격장
아직 봄은
미수
옆구리의 발견
다시 담배꽃
인공수정
새우잡이 닻배가 웃는다
파랑의 먼 곳으로부터
우물
사소한 기록
호접몽
어느 똥통 지옥
무당나비
닭발이 없었다면
빙폭
명랑한 남극
물방개, 검정 물방개
기린의 취향
경로당
공포의 축제
청개구리의 목젖이 빛나는 밤
흑매화와 호랑이
꽃제비
활엽수림 도서관
우니코르가 온다
월식
봄 산
풀과 생각
가뭄
올랭피아
돛대봉
빈집에 핀 목련
씨앗의 발견
사랑 혹은 폭포
북극 생각
식물성의 발견
여름 이사
돼지머리와 화랭이
부뚜막 방
꽃잠
개구리울음넝쿨
고래자리
일획의 꼬리가 굽어 빛나고
소한에서 대한 사이
마이산 천지탑
맨드라미
어떤 평화
하품 한 자락
물옥잠
세숫대야에 뜬 별빛
담의 공백
프로펠러
죽순
허기의 관
두 가닥 레일을 기리는 노래
큼지막한 수박에 대한 송가
서정적으로
월광욕
소문
안녕, 서울이여!

해설|유성호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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