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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저자 : 자크 알렝 밀레
출판사 : 새물결
출판년 : 2008
ISBN : 9788955591828

책소개

자크 라캉의 핵심 저서인 총 27권의 '세미나' 중, 그의 대표적 세미나 중 하나인 <세미나 11권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은 한국어로 번역된 라캉의 첫번째 세미나이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완역된 라캉의 저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총 27권의 라캉 세미나들 중에서 ‘세미나 11권‘이 최초로 번역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73년에 발간된 ’세미나 11권’은 프랑스에서도 라캉의 세미나 가운데 최초로 출간된 것으로서, 1963~1964년에 행한 열한번째 ‘구술’ 세미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라캉은 ‘세미나 11권’에서 IPA(국제정신분석학회)가 자신을 축출한 것을 ‘대파문’이라고 표현한다. 정신분석학계 내에서 발언권을 상실한 라캉은 이러한 대파문을 정신분석의 한계로 인식하고, 정신분석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정신분석은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 정신분석은 과학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과학이 될 수 있다면, 기존의 과학과 어떻게 다른가?



라캉이 열한번째 세미나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은, IPA로 대표되는 전통 정신분석이 점점 더 종교의례에 가까워지고, 또 아무런 성찰 없이 과학을 가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세미나 11권’은 기존 정신분석의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정신분석의 토대를 정립하려는 목적을 지닌 기념비적 저작이다.



새로운 정신분석의 토대를 정립하는 것은 프로이트를 넘어서는 진정한 라캉이 탄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언어, 주체, 기표, 상징적인 것 등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들을 구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실재’와 ‘대상 a’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미나 11권’은 라캉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의식을 개념화하고, 상징적인 것 너머의 것을 이론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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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주류 학계로부터 ‘대파문’을 당한 라캉이

정신분석을 통해 과학, 주체, 확실성 등 인문과학의 핵심개념을 새롭게 정초하다.



자크 라캉의 핵심 저서인 총 27권의 '세미나' 중에서 최초로 번역된 저작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의 대표적 세미나 중 하나인 ‘세미나 11권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이 맹정현·이수련 번역으로 새물결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세미나 11권’은 한국어로 번역된 라캉의 첫번째 세미나이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완역된 라캉의 저작이기도 하다.

자크 라캉은 195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된 프랑스 현대 사상의 르네상스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그리고 그 이후 담론들에 핵심적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히지만, 그 자신은 어떠한 사상적 조류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 이론을 만들어낸 분석가?이론가이다. 평생 ‘프로이트주의자’를 자임했지만 단순히 프로이트 학설들을 연구·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 고유의 이론을 정립해, 정신분석의 토대를 재확립하고 더 나아가 그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신분석, 철학, 자연과학 등 수많은 영역을 넘나들면서 현란하게 펼쳐진 ‘세미나‘들은 ’에크리‘와 함께 라캉의 대표적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라캉 정신분석에서 자양분을 얻은 이론들, 그를 직접적 대상으로 삼은 연구들이 수없이 소개되었고, 정신분석뿐 아니라 문학 이론, 철학, 페미니즘,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그를 수용·언급했지만 정작 그의 ‘세미나’를 한국에서 접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우리는 라캉을 사유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라캉을 접했을 뿐 ‘라캉의 사유’를 직접 대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이 책의 발간으로 여태껏 소문으로만 전해져온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라캉의 텍스트는 ‘읽히지 않기 위해 쓴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지극히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라캉의 텍스트를 한국어로 ‘읽힐 수 있게’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있는 옮긴이들의 정신분석에 대한 이해, 번역 작업에서의 성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캉 세미나의 편자이자 그의 유고 상속자이기도 한 자크­알랭 밀레와의 협의하에 진행된 번역 작업에서는 원문을 오류 없이 옮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았다. 명료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는 언설 스타일, 타 언어권에서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언어유희 속에 담겨 있는 풍부한 의미를 한국어로 담아내고자 했으며, 또 아직 확립되지 않은 용어들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용어 번역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여러 가지 번역어가 혼재하는 상황에서 단어들을 저울질해 가장 적합한 단어를 사용하려 노력했고, 기존에 소개된 번역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경우에는 새로운 번역어를 선정해 제시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새물결 출판사는 이 책의 옮긴이들과 함께 ‘세미나 1권’을 포함해 라캉의 세미나(총 27권)들을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대파문’, 그리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라캉

라캉의 세미나는 1953년 시작되어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행해졌으며, 매 해의 세미나를 제자이자 사위인 자크­알랭 밀레가 편집해 책으로 발간하고 있다. 출간되어야 할 권수는 27권이고 프랑스에서도 아직 모든 세미나가 출간되지 않고 계속 발간 중이다. 그렇다면 총 27권의 라캉 세미나들 중에서 ‘세미나 11권‘이 최초로 번역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1973년에 발간된 ’세미나 11권’은 프랑스에서도 라캉의 세미나 가운데 최초로 출간된 것으로서, 1963~1964년에 행한 열한번째 ‘구술’ 세미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 시기는 라캉에게 ‘위기’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도약’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53년에 입장 차이로 파리정신분석학회(SPP)를 떠나 동료들과 프랑스정신분석학회(SFP)를 설립한 라캉은 그 뒤로도 기존 정신분석의 ‘규칙’들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SPP 및 국제정신분석학회(IPA)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1963년에 IPA에서 축출당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을 상황이 벌어지는데, 루이 알튀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페르낭 브로델 등의 도움으로 고등사범학교(ENS)에서 세미나를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라캉의 세미나가 정신과 의사나 정신분석가들을 상대로 했다면, ENS에 새로운 ‘기지’를 구축한 이 시기부터의 세미나에는 당대의 지식인들뿐 아니라 장차 프랑스 사상계를 주도하게 될 젊은 철학도들 ― 이후 라캉의 사위가 되는 인물이자 ‘세미나’ 시리즈의 편집자이며 라캉의 저술 저작권을 모두 소유한 자크­알랭 밀레도 이 세미나에서 라캉을 처음 만났다 ― 도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ENS에서 실시한 첫 세미나가 바로 그의 열한번째 세미나이며, 그 텍스트가 그의 세미나 가운데 최초로 문자로 확정되어 출간된 것이다. 말하자면 ‘세미나 11권’은 라캉의 정신분석이 프랑스 정신분석학계뿐 아니라 프랑스 사상계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에 위치한 세미나이다.

라캉은 ‘세미나 11권’에서 IPA가 자신을 축출한 것을 ‘대파문’이라고 표현한다. 정신분석학계 내에서 발언권을 상실한 라캉은 이러한 대파문을 정신분석의 한계로 인식하고, 정신분석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정신분석은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 정신분석은 과학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과학이 될 수 있다면, 기존의 과학과 어떻게 다른가? 라캉이 열한번째 세미나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은, IPA로 대표되는 전통 정신분석이 점점 더 종교의례에 가까워지고, 또 아무런 성찰 없이 과학을 가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세미나 11권’은 기존 정신분석의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정신분석의 토대를 정립하려는 목적을 지닌 기념비적 저작이다.

다른 한편 ‘세미나 11권’은 1950년대의 라캉과 일종의 ‘단절’을 시도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언어, 주체, 기표, 상징적인 것 등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상징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들을 구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1950년대만 해도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면서 구조주의와 언어학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세미나 11권’에서 라캉은 ‘구조의 완결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게 되고, 그러면서 ‘실재’와 ‘대상 a’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세미나 11권’은 라캉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의식을 개념화하고, 상징적인 것 너머의 것을 이론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세미나 11권’에 소개



1 프로이트를 넘어 진정한 라캉이 태어나는 계기

새로운 정신분석의 토대를 정립하는 것은 프로이트를 넘어서는 진정한 라캉이 탄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전에 라캉이 전념했던 작업은, 프로이트의 정신을 망각하면서 정신분석을 사회 적응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미국식 ‘자아심리학’을 비판하기 위해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주창하는 것이었다. ‘세미나 11권’에 이르러 라캉은 보다 급진적인 계획을 세운다. 이제 그는 기존 정신분석의 이러한 퇴행성이 프로이트 자신 안에 정신분석의 원죄로서 잠재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진정한 정신분석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를 넘어 정신분석의 토대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미나 11권’에서 라캉은 프로이트의 욕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프로이트를 넘어선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거세의 암초’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귀착했다고 보면서 그러한 암초를 넘어 정신분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실재’와 ‘대상 a’ 개념이다. 전년도 세미나인 ‘세미나 10권-불안’에서 이미 대상 a를 도출한 바 있는 라캉은 이제 대상 a를 중심축으로 삼아 ‘정신분석의 근본 개념들’을 전격 수정하게 된다.

생전에 라캉은 대상 a야말로 자신의 유일한 발명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진술의 이면에는 그가 어떻게 프로이트와 다른지가 함축되어 있다. 라캉은 현대 언어학 덕분에 프로이트로부터 ‘아버지의­이름’을 도출해냈지만, 어찌되었건 그것을 발명한 사람은 라캉이 아니라 프로이트이다. 라캉이 프로이트를 넘어서는 순간은 ‘아버지의­이름’을 복수화하고 자신의 관심을 대상 a로 돌리면서부터이다.



2 위상학적 방법으로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들’을 정초하려는 시도

-‘세미나 11’의 핵심 내용과 구성

‘세미나 11권’의 근본 과제는 대상 a를 중심으로 삼아 정신분석을 지탱하는 ‘네 가지 개념’을 위상학적 관점에서 정초짓는 것이다. 라캉이 제시하는 네 가지 개념은 ‘무의식’, ‘반복’, ‘충동’, ‘전이’이다. 라캉은 개념들을 개별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그것들에 위상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주체’와 ‘실재’라는 개념이 네 가지 근본 개념들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주체’란 시니피앙의 주체, 시니피앙에 의해 전복된 주체를 의미하며, ‘실재’란 대상 a를 의미한다. 시니피앙에 의해 전복된 주체가 상실된 주체라면, 대상 a는 그러한 상실된 주체를 지탱하고 결정짓는 리비도적 실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상실된 주체가 소외의 결과라면 대상 a는 분리의 결과이다. 라캉은 ‘소외’와 ‘분리’ 이론을 통해 네 가지 개념을 정립한다. 이는 라캉이 시니피앙에 근거하는 무의식적 주체와 욕망 이론을 충동과 환상 등으로 요약되는 리비도 이론과 접속시키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미나 11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 책은 네 개의 부(part)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무의식’과 ‘반복’을 다루며, 2부에서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유작인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출간과 관련해 ‘시관(視觀) 충동’과 그 충동의 대상인 ‘응시’를 다룬다. 3부에서는 다시 본래의 세미나 주제로 돌아와 ‘전이’와 ‘충동’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3부에서 제시된 전이 개념을 좀더 가다듬고, 그에 따라 정신분석의 종결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다. 이러한 네 개의 부는 매우 유기적이며 위상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미나 11권’의 핵심축은 3부와 4부에서 완성된 ‘소외’와 ‘분리’의 이론이다. 소외 개념은 주체 이전에 타자, 언어의 질서가 존재하며, 따라서 주체가 주체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질서 속에서의 소외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말을 하는 주체는 사물의 살해를 유발하는 언어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다. 1950년대에 라캉이 개진한 테제들이 이러한 기조에 입각했다면, ‘세미나 11권’과 그보다 앞선 논문인 '무의식의 위치'에서 그가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 바로 ‘분리’ 이론이다. 분리란 상징적 질서로 인해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주체가, 상징적 질서 속의 불가능성, 타자의 결여 등을 경유해 최소한의 정체성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이다. 소외가 빗금 친 주체(S)가 탄생하는 과정이라면, 분리는 대상 a가 연역되는 과정이다. 1950년대의 라캉이 소외 이론을 대표한다면, 분리 이론에 입각한 ‘세미나 11권’에서 그는 대상 a를 중심으로 충동의 구조를 재정립하고 이와 동시에 새로운 전이 개념을 완성한다. 새로운 전이 개념의 완성은 정신분석의 종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는데, 라캉은 세미나 결론부에서 ‘환상을 넘어서’를 정신분석이 도달하는 종착점으로 상정한다. 정신분석의 종결점을 환상 저편으로 상정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거세의 암초에 부딪혀 ‘환상 이편’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인식에 기초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는 라캉이 프로이트를 넘어 라캉 자신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계기이다.



3 프로이트뿐 아니라 라캉 자신을 넘어선 진정한 라캉이 탄생하는 과정

‘세미나 11권’이 한편으로 프로이트를 넘어서는 과정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라캉이 라캉 자신을 넘어서는 계기이기도 하다. 기존의 라캉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테제로 압축될 수 있다면, 이제 라캉은 무의식에 대한 구조주의적 관점을 넘어 무의식의 역동적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이때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그것을 실재와 접속시키는 것이다. 이제 무의식은 더이상 ‘은유’와 ‘환유’의 축에 의해 구성된 ‘타자의 담화’로 축소될 수 없게 된다. 1950년대 라캉이 인간의 무의식이 어떻게 해서 상징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보여준다면, ‘세미나 11권‘의 새로움은 이 책이 이러한 무의식이 어떻게 상징적 질서의 불가능성, 즉 실재와 접속되어 있는지를 해명한다는 데 있다.

그의 ‘반복’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때 반복은 더이상 ‘시니피앙의 반복’이 아니라 ‘실패의 반복’이다. 반복은 시니피앙의 자율성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 시니피앙이 어떻게 불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동일한 장면을 반복하고, 동일한 상황을 반복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운명으로 만들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상징을 통해 포섭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러한 상징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란 항상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시니피앙의 연쇄가 오로지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실재는 그러한 연쇄에 의한 상징화가 실패하는 지점이다. 상징적인 것과 실재 사이에 간극이 있는 한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반복이 실패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의식과 실재가 접속되는 또다른 계기는 바로 성욕이다. 1950년대에는 충동을 타자의 요구와 접속시켜 해석해낸 라캉은 이제 충동을 대상 a와 접속시켜 새로운 충동 개념을 제시한다. 시니피앙의 연쇄와 실재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할 때, 라캉이 그러한 연쇄에 의해 표상되지 못하는 실재로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성욕이다. 성욕은 시니피앙에 의해 완전히 표상되지 않으며, 성욕의 수준에서는 주체와 타자 사이에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성욕은 동물의 성욕과 달리 유기체적인 욕구가 아니다. 인간의 욕구는 ‘상징적 질서’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화는 단순히 상징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질서가 실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충동이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동이 하나의 전체로 종합되지 않는 파편화된 ‘부분 충동’이라면, 이는 충동이 시니피앙의 연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성적인 타자를 겨냥하지 못하고 대상 a 중심을 맴돌기 때문이다. 라캉은 충동을, 육체가 상징적 질서를 경유하면서 이루어진 원초적 상실의 잔여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왕복 운동으로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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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옮긴이 노트



1 파문



무의식과 반복

2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우리의 무의식

3 확실성의 주체에 관하여

4 시니피앙의 그물망에 관하여

5 투케와 오토마톤



대상 a로서의 응시에 관하여

6 눈과 응시의 분열

7 왜상

8 선과 빛

9 그림이란 무엇인가?



전이와 충동

10 분석가의 현존

11 분석과 진리 혹은 무의식의 닫힘

12 시니피앙들의 행렬 속에서의 성욕

13 충동의 분해

14 부분 충동과 그 회로

15 사랑에서 리비도로



타자의 장, 그리고 전이로의 회귀

16 주체와 타자 ― 소외

17 주체와 타자(II) ― 아파니시스

18 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 최초의 이항체, 선에 대하여

19 해석에서 전이로



결론지어야 할 나머지

20 네 안의, 너 이상의 것을



편자의 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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