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이대형의 전통주 인문학)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이대형의 전통주 인문학)
저자 : 이대형
출판사 : 시대의창
출판년 : 2023
ISBN : 9788959408009

책소개

이름마저 빼앗긴 우리 술이 향토술, 민속주를 거쳐 전통주가 되기까지
우리 술 전문가 이대형 박사의 시대별 역사와 문화를 망라한 우리 술에 대한 고찰

이 책은 서양의 코스 요리를 즐기거나 와인을 마시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쇄국 정책의 벽을 뚫고 들어온 외국 술과 그에 따른 세칙, 원조 나라에 청주와 고량주를 수출한 조선의 술, 술의 도시 한양의 풍경과 형태별로 나뉜 각종 술집 등 흥미로운 사건과 아픈 역사가 인문학을 토대로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고려를 지나 조선과 구한말의 우리 술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억압과 핍박으로 얼룩진 우리의 삶만큼 우리 술도 고난과 역경을 거치며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알수록 궁금해지고 볼수록 만들어보고 싶은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자.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조선의 한양, 일제 강점기의 마산과 군산
술의 도시 한양, 조선에 탁주 빚는 사람만 삼십만 명
조선의 한양은 술의 도시였다. 한양의 술집을 묘사하는 특징은 주등이다. 영조 때는 상소문에 ‘술집마다 술 빚는 양이 거의 백 석에 이르고, 주막 앞에 걸린 주등이 대궐 지척까지 퍼져 있을 뿐 아니라, 돈벌이가 좋아 많은 사람이 술집에 매달린다’는 양조의 병폐를 보고할 정도였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한양 큰 거리의 상점 가운데 절반이 술집임을 지적하며 술집은 한양 어디를 가든 마주치는 하나의 풍경이라고 했다. 술의 과잉 소비로 양조용 쌀이 너무 많이 소진되어 쌀값이 뛰고 덩달아 물가도 오를 정도였다.
지금처럼 맥주나 다른 술들이 쉽게 유통되거나 알려져 소비되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1915년의 《매일신보》 기사에는 ‘조선서 빚는 술이 얼마, 탁주 빚는 자가 삼십만’이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것이고 또한 막걸리를 제조하는 사람만 31만 명이라니 엄청난 수인 것이다. 당시 인구를 1699만 명으로 추정하면 인구의 1.8퍼센트가 술을 만들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것도 성인을 기준으로 하면 술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은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술의 도시 마산과 군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마산과 군산은 청주(사케)의 도시였다. 마산은 쌀 수탈의 거점 도시로 일본인의 자료에 따르면 꽃의 도시, 술의 도시였다. 일본인이 쓴 책이나 관광 안내 팸플릿에도 무학산과 합포만, 벚꽃과 술이 환상적으로 그려졌다. 마산 최초의 청주 양조장은 1904년에 일본 거류민에 의해 설립된 아즈마주조장이다. 이외에도 많은 주조장이 설립되었고, 일제 강점기하에 내수용에서 시작하여 만주와 중국 대륙에 수출용까지 생산하게 되었다.
군산 역시 쌀 수탈의 전초기지였다. 일제가 도로를 포장하고 철도를 개설하며 군산을 호남 최대의 상업 도시로 성장시킨 이유는 호남평야와 논산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함이었고 1909년 조선 전체 쌀의 32.4퍼센트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전북 지역에는 가장 많은 일본인 농장이 만들어졌고 주조장까지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양조 산업으로 이어졌다. 조선주조 군산분공장을 비롯하여 6개의 청주(사케)공장은 광복 이후에도 적산으로 분류되어 한국인의 손에 넘어갔으나 여전히 정종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한양이나 마산, 군산을 보면 시대별로 술의 도시는 존재했으나 그 역사와 문화적 배경은 사뭇 달랐음을 비교할 수 있다.

나라 잃은 설움도 모자라 설 자리마저 잃은 누룩
누룩, 개량 누룩
누룩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술에 대한 기록으로 볼 때 삼국 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누룩 빚는 법은 《산가요록》을 비롯해 40여 권의 책에 소개되어 있다. 탁주, 약주, 소주의 체계가 완성된 조선 시대에는 누룩을 파는 상점이 매우 많았다. 술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누룩이 사용되었는지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조선 말기에도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소규모 누룩 제조장이 있었는데 이는 다양한 술이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세금을 걷기 위해 조선의 자가 제조 및 판매용 누룩의 품질이 고르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며 품질 향상을 위해 누룩 제조장을 통합함과 동시에 각 지방별로 누룩 제조 시설을 집약시켜 개량 누룩의 제조를 권장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누룩 생산 공장이 감소하고 누룩의 다양성도 서서히 사라졌다.
이 책에서는 전통주의 중요한 원료인 그 많던 누룩은 다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이 나오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힘내라, 한국 술!
주세법상 전통주는 가.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주류(무형문화재 술), 나. 〈식품산업진흥법〉에 따라 주류부문의 식품명인이 제조하는 주류(식품명인 술), 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따라 농업인 또는 농업경영체에서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서 제조한 주류(지역특산주)로 정의한다.
시련과 역경을 겪으며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우리 술, 전통주.
이제 전통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생산자 들의 꾸준한 노력과 연구를 통한 제조 방법은 견해와 이미지마저 바꾸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술도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드라마를 시작으로 한 ‘한류’는 전 세계로 뻗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단절된 우리 술의 역사를 연구하고 조사해서 사라진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고 새롭게 조명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구성
조상부터 MZ까지 한국인에게 술이란?
술자리는 늘 즐겁다. 친구, 지인과 술을 마시면서 내가 알고 있는 술 상식을 뽐내는 것도 술자리의 묘미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술자리에서 넓고 얕은 지식을 자랑할 수 있도록 간단한 용어 해설로 페이지를 열었다.
1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와인을 마신 우리 조상들의 관능 평가와 쇄국 정책의 벽을 뚫고 들어온 외국 술에 대한 관세와 우리식으로 지은 술 이름으로 흥미를 제공한다. 한국 와인의 시초가 프랑스의 포도나무였고 식량 부족으로 만들어 낸 최초의 한국 와인이 쌀포도주라는 것, 국산 식용 포도로 만든 달달이 와인에 소비자가 등을 돌리자 노력을 거듭하여 현재의 한국 와인이 되기까지의 내용을 담았다. 일본의 토리스 위스키를 베낀 도리스 위스키는 유사 위스키의 오명을 안고 이후 도라지 위스키로 재탄생하는데 그보다 놀라운 이야기가 더 많이 펼쳐진다. 사케와 고량주를 원조 나라인 일본과 중국에 수출한 조선의 술이 1909년 일제에 의해 주세법이 도입되면서 주세령 시행 후 어떤 식으로 분류되었는지 짚어보았다. 10여 개의 맥주병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찍은 어느 하급 관리의 사진과 이틀 후 일어난 조선과 미국 간의 전투, 구한말 수입 맥주와 삽화를 넣은 신문 광고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루었다. 종량세와 종가세의 차이를 알려주고 편의점 ‘만 원 네 캔’ 수입 맥주가 들어오기까지의 주세, 1900년대 프랑스 사진엽서 속 우리 술과 잘못 알려진 주막 사진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2장은 한양에도 서울만큼 술집이 많았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고려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술을 따로 만들었던 관청이 있었다는 것과 물 대신 술로 약을 먹은 이유나 조선 시대에도 코스 요리가 있었다는 것은 읽을수록 신기하다. 조선 시대의 한양에 술집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술집 중 최고로 핫한 집은 어디인지 찾아보았다. 병술집, 내외주가, 목로주점, 색주가 등 다양한 술집을 소개하고 주막에 대한 오해도 풀어준다. 조선에 탁주 빚는 사람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한양이 왜 술의 도시였는지는 실록의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인에게 막걸리란 어떤 의미인지, 막걸리가 국민술의 타이틀을 빼앗긴 내용과 외국인의 눈에 비친 개화기 조선인의 술 문화를 다루며 조선 사람들이 어찌나 술을 좋아하는지 왕이나 영의정도 술에 취하면 바닥에 뒹굴거나 잠을 잔다며 폭음이 허용된 나라로 비치기까지 했다. 외국인이 본 단편과 달리 조선은 술 마시는 것을 조심하기 위해 ‘향음주례’를 통해 예를 갖춰 술을 마신 나라이기도 하다.
3장의 내용은 다소 암울하기까지 하다. 시대에 따른 우리 술의 변화에 대한 내용으로 먼저 외국의 금주법을 설명하고 우리나라의 시대별 금주령을 기술했다. 금주령으로 인해 전통주는 변화하고 술은 다양화했다. 그로 인해 증류주가 새롭게 탄생하고 심지어 조선에서는 유럽의 포트와인보다 앞선 과하주가 탄생한다.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면서 주류 품평회가 열리고 신문은 실시간으로 품평회 소식을 업데이트한다. 그럼에도 이때는 우리 술의 암흑기이기도 했다. 주세령에 의해 생산량 최저 한도를 정함으로써 소규모 양조장을 정리하고 공장형으로 변모하면서 우리 술의 억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우리 술이 시대의 아픔을 겪으며 변화에 발맞춰야 했던 슬픈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많던 누룩은 세금을 목적으로 개량 누룩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시대적 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감소로 결국 우리의 누룩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4장은 알면 알수록 빠져들게 하는 우리 술 이야기로 가득하다. 맑은 술 청주가 사케로 바뀌고 우리의 맑은 술은 약주로 남게 된다. 주세법상 약주와 청주는 같은 듯 다르다. 식민의 아픔을 겪은 만큼 술도 핍박과 억압을 받게 되고 ‘군산’과 ‘마산’은 쌀 수탈의 전초기지로 청주(사케) 산업을 발달시킨 도시가 된다. 입국 막걸리가 제조되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입국 막걸리가 전통주인지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한다. 술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최남선의 조선의 유명한 술에 대한 내용을 짚고 넘어간다. 최남선은 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까? 숙취의 대명사 막걸리에 대해서도 자세히 파헤쳤다. 본 적도 없고 만든 적도 없는 카바이드 막걸리와 막걸리 숙취의 원인은 무엇인지, 1970년대의 막걸리 소비의 감소 원인과 흔들리는 막걸리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기술했다.
5장에서는 겨울에도 찬술을 마시는 우리 민족이 따뜻하게 데워 마시던 전통주에 대해 소개한다. 우리 술이 어떤 계기로 전통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와 구정에 마신 도소주와 추석에 마신 신도주에 대해 언급했다. 또 정종의 등장을 살펴보고 시대별로 술집의 홍보와 술의 매체 광고를 살펴보았다. 술마다 왜 전용 잔이 필요한지, 현대에 이르러 MZ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가 유행하고 있음을 알리고 하이볼보다 맛있는 전통주 칵테일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책 중간중간 내용에 맞게 와인, 위스키, 맥주, 막걸리, 소주, 과하주, 누룩, 청주(사케), 입국, 전통주 칵테일의 제조 과정을 참고를 통해 알려준다. 또 화질이 좋지 않은 오래된 신문 기사는 사진 대신 QR 코드를 제공했다.
우리 민족의 변화만큼 우리 술도 변화와 억압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MZ세대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 술의 양조와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양조장들의 새로운 변화와 노력은 전통주인 우리 술이 이제 더 이상 고리타분하거나 예스러운 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저자 서문
술자리에서 넓고 얕은 지식 자랑하기
일러두기
미리 보는 컬러 사진

1장 우리 조상도 외국 술을 마셔 보았을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와인을 마신 사람은 누구일까?
조상들의 외국 술 관능 평가
쇄국 정책의 벽을 뚫은 외국 술
[참고1] 와인 만들기
한국 와인의 시초는 프랑스 포도나무
최초의 한국 와인, 쌀포도주
조선 와인 피노 그리, 피노 누아, 보르도 누아
식량 부족이 만들어 낸 국산 포도주
국산 식용 포도로 만든 달달이 와인
힘내라, 한국 와인!
위스키는 유사길 샴페인은 상백윤 브랜디는?
위스키의 품격
관세를 적용한 수입 술
유사 위스키가 판치는 세상
위스키의 두 얼굴
[참고2] 위스키 만들기
사케와 고량주를 수출한 나라, 조선
주세령에 따른 조선의 술 분류
원조 나라에 수출한 청주(사케)와 고량주
처음으로 맥주를 마신 하급 관리의 슬픈 역사
국산 맥주보다 저렴한 편의점 ‘만 원 네 캔’ 수입 맥주
조선 시대의 맥주
수입 맥주와 신문 광고
[참고3] 맥주 만들기
1900년 프랑스 사진엽서 속 우리 술
세계 최초의 엽서와 우리나라의 엽서
잘못 알려진 엽서 속 주막 사진

2장 한양에도 서울만큼 술집이 많았을까?
왕실의 술을 따로 만들었던 관청
궁궐의 술을 만드는 곳
물 대신 술로 먹는 약
조선식 전통주 코스 요리 ‘진연’
음식과 술의 조화
한식 코스 요리
한양에서 가장 핫한 술집을 찾아라
주막에 대한 오해
다양한 술집
한양에서 가장 핫한 술집
술의 도시 한양
조선에 탁주 빚는 사람만 삼십만 명이라니
‘국민술’ 타이틀을 빼앗긴 막걸리
한국인에게 막걸리란
[참고4] 막걸리 만들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개화기 조선인의 술 문화
폭음이 허용되는 나라
외국인이 바라본 조선의 술
조선 사람들은 왜 술을 좋아할까?
[참고5] 소주 만들기

3장 시대에 따라 우리 술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조선 금주령, 전통주의 변화 그리고 술의 다양화
외국의 금주법
우리나라의 시대별 금주법
조선의 과하주, 유럽의 포트와인보다 먼저라고?
증류주의 탄생과 이동
새로운 술의 등장
다르지만 비슷한 술
[참고6] 과하주 만들기
조선 최초의 주류 품평회 실시간 업데이트
제1회 주류 품평회
공장형 술의 부흥, 가양주의 쇠퇴
구한말 양조용 쌀 품종은 ‘곡량도’
무늬만 전통주, 수입 쌀 막걸리를 마시는 농민들
양조용 쌀의 중요성
우리 술에 사용한 쌀 품종
호평받던 우리 쌀 지금은 어디로
그 많던 조선의 누룩은 어디로 갔을까?
발효의 기다림과 설렘
누룩의 역사
일제 강점기 세금 목적 개량 누룩 제조
지속적 감소로 설 자리를 잃은 누룩
[참고7] 누룩 만들기
혼돈주와 폭탄주는 같을까 다를까?
현대의 폭탄주
조상들의 혼합주

4장 알수록 빠져드는 우리 술 이야기
약주와 청주, 같은 술 다른 느낌
청주는 사라지고 약주만 남아
조선의 약주와 청주
주세법 시행령에 따른 누룩과 입국 사용의 변화
일본의 쌀 수탈은 지역 청주(사케) 산업을 발달시키고
청주(사케)로 유명한 군산
꽃의 도시 술의 도시
쌀 수탈의 전초기지
[참고8] 청주(사케)만들기
입국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 마셨을까?
입국 막걸리는 전통주일까?
백국균과 흑국균
자유로운 입국 사용
[참고9] 입국 만들기
술알못 최남선, 조선의 유명한 술을 말하다
조선의 유명한 술
최남선이 언급한 지명의 의문점
최남선은 정말로 술을 잘 알았을까?
막걸리의 누명(feat. 카바이드)
숙취의 원인
소문만 무성한 유령 막걸리
안녕하십니까, 1970년대의 막걸리!
네 차례에 걸친 막걸리 소비의 감소 원인
흔들리는 막걸리의 정체성

5장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전통주 한 잔 부탁해요 따뜻한 걸로
따뜻한 우리 술
전통주에도 역사는 흐른다
전통주의 정의
전통주 단어의 사용
명절 때 ‘정종’을 마신다고?
명절에 마시는 술
정종의 등장
재미있는 근현대의 술 광고
조선의 술집 홍보
근대의 술 광고
현대의 술 광고
전통주에도 좋은 잔을 허하라
술잔마다 모양이 다른 이유
와인 잔과 맥주잔
전통주 전용 잔
하이볼보다 맛있는 전통주 칵테일
외국의 칵테일
한국식 칵테일과 대유행
[10참고] 전통주 칵테일

전통주 메모
용어 해설
참고 문헌
찾아보기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