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 (시각과 문화: 당신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 (시각과 문화: 당신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저자 : 마리우스 리멜레
출판사 : 글항아리
출판년 : 2015
ISBN : 9788967352837

책소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보여주듯, 시각은 흔히 다른 감각들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눈으로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시신경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문화적 현상이다. 백인과 유색인종,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남성과 여성, 제국주의자와 피식민지 주민이 세상을 보는 눈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지를 문화적 함의 안에서 봐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은 보는 것의 역사적 성격에서부터 매체와 인식론의 변화,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의 문화 교류, 공적 장소의 감시, 젠더의 차이와 자아정체성 확립의 문제까지 시각문화의 다양한 단면을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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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매체기술과 과학, 권력과 이데올로기, 인지심리학, 종교, 대중문화 속에서 복잡하게 만들어지는 ‘눈의 문화들’에 관한 입문서

시각과 문화의 근원적 관계

이 책의 주제는 문화와 시각성 사이의 원칙적인 연결관계와 조건에 대한 것이다. 저자들은 문화적인 것들이 시각적으로 이해되는 방식과, 그리하여 본다는 행위의 과정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1930년대에 발터 벤야민은 이미 지각이 “자연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이라 말하면서 감각의 지각 방식과 종류는 인간 집단의 현존재 방식 전체와 함께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즉 지각이란 생물학적 기정사실이 아니라 문화적 변수다. 감각지각은 역사적으로 변화하고 사회적 영향을 받으며, 특히 그 지각이 이루어지는 매체에 의해 좌우된다. 즉 우리의 지각은 문화적 구성 요소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본다는 행위를 어떤 상징이 점령하는가, 이는 문화적 위계와 가치 질서를 나타내는 거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개되는 것은 다양한 “눈의 문화들”이다. 저자들은 각기 다른 중점을 지니는 여덟 개 영역을 선정하여 본다는 행위의 주체와 대상, 객관성과 과학성, 구조와 방식 등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던진다. 각 장은 특정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교화부터 영화 스틸 컷, 안구 도식, 유명 작품 사진, 광고 포스터에 이르는 다양한 이미지를 토대로 각기 다른 ‘시각문화’의 작동 방식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저자들은 장 첫머리에서 독자에게 제시한 이미지를 비약이나 과장 없이 조심스럽게 분석하면서 ‘본다’는 행위 자체를 전경화한다. 각 장 본문을 읽기에 앞서 그림을 ‘보았을’ 독자가 ‘보지 못한’ 다양한 코드와 논점을 제시해나가는 과정은 대단히 섬세하게, 집중력 있게 이루어진다.
이 과정이 특히 조심스러운 것은 ‘보는 것’의 영역에서는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텍스트라는 기호 구성물을 통해 제시되는 논의들은 수사학, 언어학, 문예학, 철학 등의 유구한 학문에 의해 이미 성찰과 분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사진, 영화, 삽화 혹은 다른 여러 볼거리의 경우 그 ‘인공성’과 ‘가공성’을 쉽게 잊은 채 시각자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인식을 갖기 쉽다. 수많은 학자가 강조해왔듯, 시각은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은 ‘본 것은 믿을 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가 무엇을 보여주고 또 믿게 만드는가를 생각함으로써 보는 것과 믿는 것 모두를 의문에 부쳐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본다는 행위의 위상과 형식은 변화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의 중앙에는 커다란 원이 있다. 눈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원의 중심, 즉 동공에는 수난의 그리스도 반신상이 있고, 그리스도의 주변에는 분노, 교만, 음욕, 나태, 탐식, 인색, 금전 탐닉, 질투라는 일곱 가지 죄악이 둘러싸듯 그려져 있다. 그림 네 모퉁이에 위치한 네 개의 원은 인간의 네 가지 종말을 담고 있다. 임종, 최후의 심판, 지옥, 천국이 그것이다. 그림 하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나의 얼굴을 감추고 그들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리라.” 그리스도의 눈, 그 시야에 펼쳐진 일곱 가지 죄악과 그 바깥의 종말 묘사로 이루어진 이 그림에서 관찰자(그리스도)는 바라봄의 행위를 통해 인간 세상의 악을 단죄하고 행위 질서를 명령한다. “주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이 그림은 훈계의 성격을 띤 금언들이 종교와 맞물려 일상에 침투해 있었던 근대 이전의 시각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의 시선’은 권력을 가진다. 그리스도는 바라봄을 통해 문화의 구성원들을 규제의 대상이자 규율을 지켜야 하는 주체로 호명한다. 이러한 시선과 권력의 결합을 인지하고 제시된 규율에 부응함으로써 ‘호명된 주체’들은 사회 구성원이 된다. “그리스도의 시선 아래에 구원이 있고 그 밖에 종말이 있다”라는 시각적 이데올로기가 구성원들을 주체들로 각인하고 생산하는 것이다. 이렇듯 ‘시각문화’란 그 문화에 속하는 구성원들이 묘사된 내용을 적절하게 해독하고 특정 담론과 연결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수용을 내면화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다. 특정한 시각문화는 특유의 원리, 신념, 관습, 대상, 의례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때 시각문화는 세계에서 의미 있는 부분들을 의도를 갖고 잘라내, 구성원들에게 제시한다. 따라서 특정 시대의 시각문화는 그 시대의 ‘바라봄’의 기능과 형식, 의미에 대한 강제 및 규제로 작동한다.
물론 한 시대에도 다양한 권력의 의도가 존재하는 만큼 같은 시대의 시각문화를 단일한 윤곽으로 그리기는 어렵다. 보는 행위와 그것을 재현하는 역사 속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쳐왔다. 매체, 재현 규범, 사고방식의 변화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보는 것’의 의미와 성격은 변모한다. 예컨대 근대에 들어 자리 잡은 원근법적 세계 인식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단선적인 발전이나 보는 눈의 주체화라는 식으로 보아서는 많은 것을 놓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원근법은 과학과 사진기술의 발달로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를 성공적으로 파악하게 된 결과가 아니라, 경험적 세계 접근법을 모색하던 과학자와 건축가, 예술가들이 보이는 것과의 관계에서 특권적 관찰자의 위치를 점하고자 한 의도가 정착된 결과다. 원근법 패러다임으로 보는 시대의 관찰자는 보스의 그림 속 그리스도와 같은 관찰자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본다.
시각 패러다임이 변모해온 역사가 말해주듯 ‘본다’는 행위의 상징적 위상은 의심할 나위 없이 문화적이고 또한 역사적이다. 때문에 ‘본다’는 것의 문화를 다양한 맥락에서 다시 고찰하고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다양한 ‘시대의 눈’과 마주함으로써 각 문화와 각 관찰자들의 주요 관심사, 고유성, 관계와 함의를 구분해야 한다. 이것이 시각문화 연구가 지향하는 바다.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
서론에 해당하는 1장은 이미지와 눈의 전반적인 특성 그리고 시각성과 문화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2장에서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통해 보는 행위의 이중적인 측면을 소개한다. 그림 속에서 관찰자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시선과 관찰자가 그림 속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행위는 시선과 권력의 결합을 낳고 규율과 금제를 만들어낸다. 저자들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을 인용하여 그림을 관찰하는 행위와 그 시각성에 감춰져 있는 주체 형성의 차원에도 주목한다.
3장은 서구가 타자로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동양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와 표상을 만들어내는 시각적 구성에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권력전략적 시선과 동양을 전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4장에서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매체 변화와 시각문화의 관계를 성찰한다. 저자들은 매체기술의 변화에 있어서 분명한 전제가 되는 지각의 역사성을 언급하고 매체로 전달되는 이미지를 독자적인 연구 대상으로 인식하여 이미지가 가진 고유의 논리와 그 기능에 맞는 이론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5장에서는 시각에 대한 인식이 기하학적 광학에서 생리학적 광학으로, 단안의 보기에서 양안의 보기로 전환되면서 나타난 인식론적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19세기 초 인식론적 표상들의 모델이었던 카메라 옵스큐라는 단안의 보기를 대표하는 기구였으나, 입체경이 발명되면서 생리학적 광학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후 시장에 넘쳐난 영상들은 한편으로는 지각과정에서의 주체의 구성적 역할을 얻어내는 데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주체는 역설적이게도 스테레오사진의 ‘현실성 효과’에 기댄 본격적인 이미지 산업의 목표물이 되었다.
6장에서는 신디 셔먼의 예술사진을 통해 자아 정체성과 시각적인 것의 관계를 설명한다. 자아는 기존의 이데올로기 혹은 문화적 산물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오늘날 자아 형성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모델은 대중문화다. 이 장에서 저자들은 자크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을 참조하여 주체가 언제나 집단적으로 미리 각인되어 있고 내면화된 본보기들의 ‘거울’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7장에서는 CCTV의 예를 통해 도처에서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시선을 돌린다. CCTV는 사적 영역을 보호하면서 침해한다는 양면성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판옵티콘 형식에서 나타나는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관계와 현대의 모바일 감시체제를 통한 포스트판옵티콘 질서를 거론하며 감시하는 눈의 작용과 함의를 폭넓게 다뤘다.
8장에서는 네덜란드의 구호단체 코드에이드 광고의 예를 들어 상품스펙터클 사회에서 소비문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광고는 부단히 우리를 소비자, 즉 경제주체로 호명하며, 광고 속 이미지성은 특정 제품을 라이프스타일과 욕망의 논리와 연결시켜 제품의 구매를 촉구하는 데 이용된다. 저자들은 안티광고 혹은 안티마케팅광고 전략을 이용한 코드에이드 광고의 예를 통해 시각적인 것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적 분석을 촉구한다.
9장은 과학사와 과학이론에서의 시각과 인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시각적 객관성이라는 가치 자체가 문화적으로 코드화된 것임을 주장한다. 동시에 이미지라는 시각화의 가능성이 갖는 포괄적 효력이 과소평가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이미지를 역사의 대리인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10장은 결론으로, 시각문화라는 분야가 독일의 제도권 학문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영미권 학계와 비교하여 간략히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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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옮긴이 서문
1장│서론│시각문화들: 눈의 문화성
2장│역사적인 눈: 시각성은 시대의 징표인가?
3장│포스트식민주의적인 눈: 타자의 시각적 구성
4장│매체적인 눈: 시각성에 관한 매체이론
5장│이중의 눈: 단안의 시각에서 생리학적 시각으로
6장│내면의 눈: 자아 이미지와 동일시
7장│관찰하는 눈: 판옵티콘에서 CCTV까지
8장│소비하는 눈: 상품스펙터클과 이데올로기 비판
9장│과학적인 눈: 인지 그리고 과학사
10장│결론│연구 영역으로서의 시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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