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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수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본)
가난한 예수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본)
저자 : 김근수
출판사 : 동녘
출판년 : 2017
ISBN : 9788972979043

책소개

〈루가복음〉의 해설서인 『가난한 예수』에서 저자는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을 선택했듯이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며, 예수가 가난하게 살았듯이 교회는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교는 가난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도 아니다. 부자와 권력자에 의지해 종교조직의 안정을 꾀한다”고 지적한다. 독일에서 신약성서학을 공부하고, 엘살바도르에서 남미의 해방신학을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은 과연 예수를 바로 알고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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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국의 대표적 해방신학자 김근수의 독보적 예수론!
해방신학으로 새롭게 읽는 해설서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에 선출된 뒤 즉위명을 ‘빈자의 성자’로 꼽히는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즉위 이후 첫 미사에 바티칸 청소부들을 초대하는가 하면 부활절에는 무슬림 여성의 발을 씻겨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성탄 전야 미사를 집전하면서 “이 사회는 종종 소비주의, 쾌락주의, 부유와 사치, 외모지상주의와 자기애에 취해 있다”며 “가난하게 태어난 아기예수를 따라 본질적인 가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속화된 교회에 대해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란다”고 말해왔다. 2014년 한국에 온 교황은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과 사랑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비판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서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교회는 과연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 있는가.

종교인 과세와 교회 세습 문제가 뜨겁다. 대형 교회들이 일부 신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부자 세습을 단행하고, 여전히 종교인 과세를 거부하는 일부 종교인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권리를 누리려고 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적 시선의 근원에는 낮은 데로 임하는 교회가 아니라 돈을 좇는 기업이 되어버린 일부 교회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예수가 지금의 한국 교회를 바라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천주교회라고 다를까?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에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저 ‘사교 모임’에 그치고 마는 위험입니다. 그런 교회는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닙니다. 악마로 하여금 여러분이 부자를 위한 부유한 교회, 잘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 천주교회는 가난한 교회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도 아니다. 〈루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한국 천주교회에 널리 퍼진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군국주의 냄새가 심하게 난다”라고까지 말한다.

〈루가복음〉의 해설서인 이 책에서 저자는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을 선택했듯이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며, 예수가 가난하게 살았듯이 교회는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교는 가난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도 아니다. 부자와 권력자에 의지해 종교조직의 안정을 꾀한다”고 지적한다. 독일에서 신약성서학을 공부하고, 엘살바도르에서 남미의 해방신학을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신은 과연 예수를 바로 알고 있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편애하라, 가난한 사람을!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주제는 ‘죄’가 아닌 ‘불평등’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루가복음〉에 열광할까? 해방신학은 왜 〈루가복음〉을 좋아할까? 지금 한국에 왜 〈루가복음〉이 필요할까? 한국의 대표적 해방신학자인 저자를 사로잡은 질문들이다. ‘믿음의 예수’를 주제로 한 〈마르코복음〉, ‘행동하는 예수’를 주제로 한 〈마태복음〉의 해설서를 쓴 저자는 4대 복음 해설서의 세 번째인 이 책에서 믿음의 예수와 행동하는 예수를 넘어서는 주제인 ‘가난한 예수’를 이야기한다. 예수를 믿고 예수처럼 행동하려면 가난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하느님이 그들을 가장 먼저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루가는 불평등을 고뇌한 인간이다. 루가는 죄보다 불평등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루가 공동체에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이것이 루가의 현안이다. 네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모두 혼내거나, 두둔하고 위로할 수 있다. 부자를 두둔하고 가난한 사람을 혼내거나, 부자를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을 편들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성당에서 설교자들이 부닥치는 고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루가 공동체에 준 루가의 답은 무엇인가. 루가는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을 먼저 선택하셨다고 선언한다. 루가는 부자 눈치를 보지 않고, 부자신자가 교회를 떠날까 두려워하지 않았다. 〈루가복음〉의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먼저 선택하고 일방적으로 편애한다. 부자 신자를 비판하고 가난한 사람을 응원한다.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하느님의 해방 신비를 주저 없이 선포한다. 해방의 신비를 깨닫고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악의 위력에 겁내지 말고 해방의 신비에 투신하라고 격려한다. 〈루가복음〉은 신학뿐 아니라 전례와 신심에도 많은 영향을 준 복음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의 이야기가 가장 많고, 자비 이야기도 많다. 〈루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해방신학이 가장 좋아하는 복음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해방신학자 루가 이야기를 통해 가난한 예수를 이야기한다.

신학은 하느님보다 가난한 사람을 먼저 연구하는 학문
가난한 예수는 가난한 교회를 바란다!

저자는 ‘신학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성서 본문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는 성서 본문에도 있지만 현실 역사에 있고, 특히 가난한 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신학을 공부할 때 외국의 유명한 신학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기보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서신학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하느님을 알기 전에, 신학자의 작품을 읽기 전에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그들 곁에 있고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성서신학자가 가난한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신학적으로 몰락하고 만다. 참된 성서신학자는 동시에 해방신학자다. 해방신학의 포부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성서를 공부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과 눈을 깨닫지 못한 성서신학자는 연구도, 삶도, 신앙도 실패하고 만다”라고 강조한다. “신학자가 신학을 생산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신학을 만들고, 신학자는 그다음 단계에 참여할 뿐이다. 신학자는 가난 한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울러 가톨릭 신도와 이웃 종교보다 먼저 가난한 사람을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톨릭이 평신도와 이웃 종교를 마땅히 존중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제는 신자나 이웃 종교인을 만나기 전에 먼저 가난한 사람을 만나라고도 말한다.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단순히 인정하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에게 형제자매가 됨으로써 그들의 겪는 위험을 우리 스스로 함께 지는 일이다. 저자는 예수가 왜 지식인이나 종교인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제자로 선택했는지, 부유층이 많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시골을 활동의 근거지로 선택했는지,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을 읽으면 그 의문이 풀린다.

[책속으로 추가]
장정만 5000명가량이라는 말은 여성 군중과 여성 제자를 제외한 숫자일까.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이 배불리 먹었다는 말의 의미를 알까.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성서를 잘 이해할 처지에 있다. 예수와 제자들은 가난하게 유랑한 동아리다.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하지만, 예수는 제자들에게 군중의 먹을 것을 염려하도록 가르쳤다. 가난한 교회가 가난한 군중을 보살피라는 뜻이다. 예수는 “여러분이 먹을 것을 주시오” 하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독자는 제자들이 어떻게 할지 지켜본다. 사람들은 교회가 어떻게 할지, 성직자가 어떻게 할지 지켜본다.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성직자에게 듣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성직자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실천하는지 지켜본다. -201쪽

29절에서 율법 학자는 예수에게 다시 물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는 이웃이 누구인지 개념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에게 이웃이 되어주었습니까’ 예수는 교리라는 내용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함께 다룬다. 이 장면에서 주체는 율법 학자가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이다. 예수는 내 입장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을 강조한다.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 학자의 그리스어 질문은 ‘누가 내게 가깝습니까’라고 번역할 수 있다. plesion을 형용사로 보느냐, 부사로 보느냐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260쪽

33절 “여러분은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시오”는 왜 나왔을까? 〈루가〉 저자가 속한 공동체에는 부자가 상당수 있었다. 루가는 부자 신자와 가난한 신자가 있는 공동체에서 부자에게 권고하고 경고한다. 바울로도 부자에게 요구한다(〈로마〉 15,25 〈1고린〉 7,30 〈2고린〉 8,4). 오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제들은 부자 신자에게 루가처럼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가. 교회는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가. 재산을 나누지 않으면 개인도, 교회도 회개하기 어렵다. 재산을 나누지 않고 생각과 마음만 바꾸는 것은 예수가 말한 회개가 아니다. -331쪽

성서 독자와 그리스도인은 부자를 비판하는 말이나 이야기가 성서에 왜 그리 자주 나오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난한 사람은 예수의 하느님 나라 메시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유다인과 예수를 따른 사람은 이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했다. 오늘 그리스도인도 당시 유다인이나 초대교회 사람과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두 가지 이유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교회나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선택했지만, 교회는 부자를 선택한다. 부자와 권력자를 선택한 성직자가 여전히 많다. -423쪽

예수의 감정이 15절처럼 그대로 드러난 구절은 복음서에서 찾기 어렵다. 예수의 솔직한 인간성이 잘 보이는 곳이다.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라니 예수는 얼마나 뭉클했을까. 19절에서 “이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입니다”라는 표현은 놀랍다. 우리에게 전해진 어떤 유다인 식사 기도에도 이런 말은 없다. 19절에서 동사 ‘주다didonai’가 두 번 나온다. 예수는 주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교는 받는 종교가 아니라 주는 종교다. 19절에서 연결 동사 estin은 ‘동일’, ‘일치’를 뜻한다. 예수의 몸을 상징적으로 준다기보다 정말로 주는 것이다. 물리적·문법적으로 상징을 뜻할 수밖에 없지만, 정말로 예수의 몸을 나눈다는 뜻이다. 몸을 나누는 것은 생명을 나눈다는 말이다. -548쪽

예수의 재판은 단순히 사법재판이 아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 유다교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재판이다. 나는 사법 살인이자 정치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재판이 예수 시대 유다 땅에만 있었을까. 성서를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까지 살펴보게 된다. 정치 감각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사람이 성서를 전공하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강하게 든다. -608쪽

자신을 보는 만큼 예수도 보이고, 예수를 보는 만큼 자신도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보는 만큼 예수도 보이고, 예수를 보는 만큼 가난한 사람도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보는 만큼 자신도 보이고, 자신을 보는 만큼 가난한 사람도 보인다. 모든 것은 아름답게 이어진다. 이 세상 어떤 존재도 무관하지 않다. -6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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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차례
서문_ 가난한 예수, 가난한 사람들

1부 가난한 사람들과 하느님 나라
는 왜 쓰였을까/세례자 요한 탄생 예고/예수 탄생 예고/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세례자 요한 탄생/예수 탄생/성전에서 봉헌되는 아기 예수/예수의 소년 시절/세례자 요한의 선포/예언자 요한에게 세례 받는 예수/예수 족보/광야에서 유혹받는 예수/예수의 나자렛 첫 설교/예수의 갈릴래아 첫 기적/예수의 첫 제자들 선택/나병 환자 치유/예수의 죄 사함 권한/죄인들과 식사하는 예수/안식일과 예수/안식일과 치유/제자 부르심/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원수를 사랑하라/자신의 행동을 먼저 반성하라/행동하는 믿음/로마 군인의 종을 치유한 예수/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린 예수/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의 증언/용서받은 죄 많은 여인/예수를 도운 여인들/뿌려진 씨 비유/뿌려진 씨 비유의 뜻/등불의 비유/가족의 의미/풍랑을 잠재운 예수/로마 군대에 대한 유다인의 적개심/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인/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린 예수/열두 제자 파견/불안한 정치인 헤로데/5000명을 먹인 기적/베드로의 고백과 예수의 첫 번째 죽음 예고/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예수의 변한 모습/예수를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두 번째 죽음 예고

2부 제자 교육, 가난과 저항
예수의 예루살렘 가는 길/예수를 따르는 조건/일흔두 제자 파견/일흔두 제자와 예수의 고백/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예수의 기도/어떻게 기도하는가/예수와 악마/참된 행복/기적을 요구하는 시대/눈은 몸의 등불/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 비판/예수를 당당히 고백하라/어리석은 부자들 비판/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아라/충실히 준비하라/세상을 불태우는 예수/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안식일은 인간 해방을 위해/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구원받기 위해 지금 행동하라/권력자를 비판하는 예언자 예수/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예수/낮은 자리에 있어라/예수 제자의 조건/잃은 양과 잃은 돈의 비유/돌아온 아들과 선한 아버지 비유/악하지만 현명한 집사/가난과 하느님 나라/죄와 용서, 믿음과 봉사/치유된 환자의 감사/하느님 나라와 사람의 아들/과부와 죄인의 기도/예수를 따르려면 가난해야/예수의 세 번째 죽음 예고/시각장애인 치유/예수와 세리 자캐오/지금 삶에 충실하라

3부 십자가의 길, 해방의 길
예루살렘 도착/예수의 성전 항쟁/예수의 적대자들/적대자들과 갈등/세금 납부 논쟁/부활 토론/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종교인과 가난한 여인/역사의 종말/예수 최후의 시간/최후의 만찬/제자들과 마지막 대화/체포된 예수/베드로의 배신/유다 종교 법원의 예수/로마 군사법원의 예수/헤로데에게 심문받는 예수/로마 법원에서 사형 확정된 예수/정치범으로 처형되는 예수/예수의 죽음과 장례/예수의 빈 무덤/부활한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부활한 예수가 남긴 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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