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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진: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요리의 길을 묻다
저자 : 박영봉
출판사 : 진명출판사
출판년 : 2010
ISBN : 9788980104550

책소개

일본요리를 예술로 끌어올린 로산진의 요리 철학!

도자기와 서예, 전각과 칠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던 예술가 로산진. 절대 미각을 바탕으로 궁극의 요리를 선보였지만 독단적인 성격과 기행 때문에 희대의 이단아로 불린 요리인 로산진.『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은 기타오지 로산진 사후 50주년을 맞아 일본요리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그의 삶을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의 인상적인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가 음식과 그릇의 어울림이었다고 말한다. 그릇과 식기가 완성하는 일본요리 예술의 키워드로 로산진을 꼽으며 그의 요리 세계를 다루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은 시절이다. 인터넷에는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그들이 넘쳐나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온갖 매체에도 요리와 맛집에 관련된 콘텐츠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먹는다는 것이 생존의 문제를 넘어 삶을 즐기는 도구의 하나가 된지도 오래되었다. 길거리 상점만 보더라도 온통 음식점과 주점 투성이다. 우리의 삶이 먹고 마시는 데 집중되고 그와 관련된 환경에 포위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에 집착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요식업계에서 종사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음식 문화는 과연 합격점을 줄만한 수준일까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점심을 바깥에서 해결하고 때로는 저녁까지 외식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이라면 우리 음식 문화에 대한 점수를 더욱 낮게 매기지 않을까 싶다. 먹을 것이 없어 차라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식사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고역이 될 수도 있다.

그릇과 식기가 완성하는 요리 예술

이런 상황은 음식 자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음식을 조리하는 도구와 음식을 담는 그릇에 대한 무신경은 음식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을 찾는 노력은 제쳐 두고라도 ‘식당 그릇 = 멜라민’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색깔만 간신히 도자기 흉내를 낸 멜라민 식기가 판을 치고 있다. 멜라민 주걱과 멜라민 국자로 조리된 음식이 멜라민 그릇에 담겨 손님상으로 차려지는 것이 우리 음식 문화의 현실인 것이다.
반면, 세계적인 음식점 평가 잡지 미슐랭 가이드는 올해도 도쿄를 ‘가장 빛나는 미식의 도시’로 선정했다. 최고 등급인 별 세 개를 얻은 레스토랑은 뉴욕의 두 배가 넘으며 이렇듯 일본 요리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며 계속 진화 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의 인상적인 이미지들 중의 하나가 음식과 그릇의 어울림이었다고 말한다.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그릇이 새삼스러웠고, 일본에 도자기 문화를 전수한 한국인의 후예로서 너무나 착잡했다는 것이다. 두 나라 요리와 그릇 문화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차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키워드로 저자는 기타오지 로산진을 꼽는다.

교토의 버려진 아이,
수많은 예술가들을 사로잡다


오늘의 일본 요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타오지 로산진은 누구인가?
로산진은 1883년 교토 북부에서 태어났다. 출생 넉 달 전 아버지가 죽었고 남의 집으로 버려지다시피 양자로 보내진 로산진의 삶은 이후로도 순탄치 않았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이를 보러간 이웃, 요시모토의 아내가 아이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데려와 자기 집에 입적시켰으나 이유를 알 수 없이 요시모토의 행방이 묘연해졌고 그의 아내마저 병으로 죽고 만다.
요시모토가 살던 경찰 관사에는 양자로 들였던 누나와 형, 그리고 로산진만이 남게 되었다. 경찰서에서는 형과 누나를 결혼시키고 형을 순사로 일하게 해 로산진을 보살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로산진이 다섯 살 되던 무렵, 아버지 역할을 하던 형마저 정신이상으로 죽고 만다. 누나의 본가에 따라가게 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로산진을 누나의 어머니가 좋아할 리 없었다. 할머니가 로산진을 학대한다는 소문을 들은 후쿠다 부부가 로산진을 양자로 받아들이고 로산진은 그나마 평범한 가장에 정착하게 된다.
목판업을 하던 후쿠다와의 만남은 전각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된다. 양부의 일은 나무판자에 붓으로 가게의 이름을 쓰거나 칼로 새겨 간판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소학교를 졸업한 로산진은 한약 도매상에서 일 년 정도 견습 생활을 한 후 양부의 일을 돕기로 한다. 타고난 감각과 틈틈이 익힌 실력으로 일을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양부의 솜씨를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스물한 살에는 일본미술협회에서 개최한 천자문 쓰기 대회에 도전해 우승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힌다. 이후 서도가 오카모토 가테이의 제자가 되고 약 3년 후 로산진은 ‘서도교수’라는 간판을 달고 독립을 하게 된다. 전각으로 명성을 얻고 수입도 제법 늘어났지만 서도를 공부하고 싶었던 로산진은 당시 조선으로 향해 3년을 보낸다. 귀국 후 다시 서도교실을 운영하게 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접고 식객으로 생활하게 된다. 식객으로 생활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고 이때 맺은 인연은 로산진을 도자기와 서예, 전각과 칠기, 디자인의 세계로 이끌게 된다. 로산진은 수많은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들에게 인정받으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키워나간다. 또한, 타고난 절대 미각을 발휘해 당대의 미식가들을 매료시키는 요리를 선보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기 만화 『맛의 달인』의 주인공
가이바라 유잔의 실제 모델 기타오지 로산진!


나카무라 다케시로와의 만남은 로산진의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다. 로산진의 예술적인 취향과 미각을 인정한 그는 로산진에게 요리집을 내자고 제안하고 이들이 의기투합해 일본 최고급 요리요정 ‘호시가오카샤료’가 탄생하게 된다.
호시가오카샤료를 향한 첫 걸음은 그릇이었다. 로산진은 그릇의 크기, 두께, 무게, 형태 등을 상세하게 알려주며 몇몇 가마에 그릇을 주문했다. 사발, 무코쓰케, 젓가락 받침, 크고 작은 접시들, 술병, 물잔, 주전자, 차 사발에서 난방용 화로, 풍로, 냄비까지 디자인하여 성형을 의뢰했고 문양은 직접 그려 넣었다. 이렇게 5천 점 이상의 식기를 준비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요리를 해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소용없다. 나는 살아있는 그릇, 죽은 그릇이라 말한다.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 번거롭다고 말하지 말라. 그릇을 사랑하고 다루는 일을 즐겨야 하며, 그릇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요리와 하나로 맺어진다. 그릇이 즐거운 것이 된다면 요리도 즐거운 것이 된다.” - 로산진

로산진에게 있어 그릇은 아름답고 살아 있는 요리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였다. 요리를 맛으로만 즐기는 일차원적 개념에서 벗어나 요리, 그릇, 인터리어, 서비스 등이 하나의 예술로 태어나야 한다는 감각과 신념으로 요리요정을 연 것이다. 요리요정을 열 때 주문 제작한 그릇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산진은 반 년 후, 가마를 만들어 호시가오카샤료에 사용되는 그릇을 직접 제작하게 된다.
다케시로와 헤어지고 호시가오카샤료를 접고 난 이후에는 본격적인 도예가로 출발을 하게 되며 그의 그릇들은 피카소 같은 거장들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오리베 도자기 분야는 비록 로산진이 거절했지만 인간국보 지정을 요청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식기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액에 거래되며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본래 가지고 있는 맛을 살려라

“요리 재료가 몇 천, 몇 만 가지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것도 독특한 자기의 맛을 가지지 않은 것은 없다. 어느 것도 대신해서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요리라는 게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살리는 데 있다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이 요리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이다.” - 로산진

현대 일본의 요리를 보면 주로 계절에 따라 그에 맞는 요리를 선보인다. 고급 가이세키 요리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요리 서적에서도 계절별, 월별 요리를 쉽게 볼 수 있다. 그것은 결국 재료가 만들어 낸 풍경이며 그것이 로산진 요리 철학의 핵심이었다. 보기엔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그들이 지닌 본래의 살아 있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 진정한 미식가의 소명이라고 로산진은 믿었다. 제철 맞은 꽁치보다 주산지도 아니고 제철도 아닌 돔이면 좋다는 사람들을 줏대 없다고 비판한 이유다.
또한, 요리를 한 가지씩 내는 방법은 지금에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로산진 당시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서너 가지 요리가 놓인 세 개 정도의 상이 처음부터 모두 나왔으며 그것을 오늘날처럼 바꾼 것도 로산진이었다.
결국 현대의 일본 고급 요리점의 요리는 기본적으로 로산진이 고안해낸 스타일과 거의 같다. 로산진의 요리 철학은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의 방식은 왕족, 귀족, 정재계 인사, 차인, 예술가를 아우르는 회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호시가오카샤료’의 회원이 아니면 일본의 명사가 아니다, 일본의 앞날은 호시가오카샤료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호시가오카샤료는 호황을 누렸다.
호시가오카샤료는 일본 현대요리뿐만 아니라 요리인의 산실이기도 했다. 그의 획기적인 요리 철학을 익힌 요리사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그것은 오늘날의 일본요리를 만든 계기가 된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는 것’이라는 그의 음식 철학은 이제 요리사들의 가슴 속에 남아 일본 요리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도자기와 서예, 전각과 칠기,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으나 너무나 넓은 장르 탓에 ‘위대한 아마추어’로 불렸으며, 절대 미각을 바탕으로 궁극의 요리를 선보였음에도 독단적인 성격과 기행 때문에 ‘20세기 최고의 망나니’로 낙인찍힌 희대의 이단아 로산진. 로산진 사후 50년을 맞아 일본요리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그의 길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의 길에서 우리 요리의 길을 찾는다.

“내가 죽고 나서 50년, 다시 말해 로산진이 죽고 나서 50년이 지나면 오만불손한 인간 로산진은 사라지고, 위대한 작품만 남을 것이다.” - 구로다 료지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프롤로그 하나 - 내 술잔에는 술을 따르지 말라
프롤로그 둘 - 펴내는 말

1. 로산진의 요리 왕국
요리 철학, 요리하는 마음
로산진 그릇의 사계 - 1월에서 12월까지
요리의 9할은 재료
로산진의 모리쓰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는 것'이다
로산진의 절대 미각
미각 일화
로산진의 레시피
조미료는 조연
로산진의 미식, 무미의 미
 ㆍ바다에는 복어, 산에는 고살
 ㆍ두꺼비와 도롱뇽 요리
 ㆍ오차즈케
우리의 요리 블로그에 기대한다

2. 홀로 서기
교토의 버려진 아이
쇠비름 같은 유전자
예술가로서의 첫 발
스승은 없어도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하다

3. 거침없는 주유
식객의 모델, 온몸이 촉수였다
인연, 호소노 엔다이
로산진의 청춘과 야마시로
요리의 날개 돋다

4. 일본의 진로를 결정하다, 호시가오카샤료
정착 그리고 시작
미식구락부
호시가오카샤료는 종합예술
그릇 5천 점을 준비하다
요리인 모집
종업원 교육
로산진의 조리장
요리는 재료다
일본의 자존심 호시가오카샤료, 회원이 아니면 명사가 아니다
잡지 『호시가오카』창간

5. 거목, 천하를 얻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독설
왕국을 건설하다
절정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
해고, 호시가오카샤료의 종말
로산진의 결혼 생활

6. 도예의 세계가 꽃피다
도예의 길에 들다
새옹지마, 도예가로 이름을 새기다
로산진의 가격
도자기 세계
 ㆍ시노와 오리베
 ㆍ긴란테
 ㆍ비젠
 ㆍ긴사이
가도가도비보

7. 미국과 유럽으로
미식 여행
맥주 이야기
여행 스케치

8. 만년과 죽음
고아로 돌아가다
로산진의 눈물
인간국보를 거절한 사람
1959년 12월 21일, 독존가다
죽음 이후

에필로그
연보
참고자료
감수의 말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