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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전쟁 50년의 점령 (중동 테러리즘의 불씨를 지핀)
6일전쟁 50년의 점령 (중동 테러리즘의 불씨를 지핀)
저자 : 아론 브레크먼
출판사 : 니케북스
출판년 : 2016
ISBN : 9788994361383

책소개

6일전쟁은 짧지만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 전쟁을 통해 요르단 강 서안, 골란고원,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를 점령하고 중동의 지도를 영원히 바꾸고자 했다. 이 책은 6일전쟁에서 시작되어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역사책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 책의 개요

ㆍ 숨 가쁜 국제 협상의 막후 ― 빌 클린턴 대통령을 쥐고 흔든 이스라엘 총리
ㆍ 폭력의 악순환 ― 이스라엘의 암살 작전, 하마스의 자살 폭탄
ㆍ 하늘에는 드론, 땅에서는 자원 통제 ―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었어도 이스라엘 점령 체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을 통해 요르단 강 서안, 골란고원,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를 점령하고 중동의 지도를 영원히 바꾸고자 했다. 이 책은 6일전쟁에서 시작되어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역사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폭넓은 1차 자료를 공개한다. 저자가 수십 년에 걸쳐 직접 만났던 이스라엘 고위 공직자, PLO 간부, 하마스 무장 전사, 노동자와 학생 등 평범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육성 증언. 그리고 팔레스타인 수반 아라파트, 라빈과 바라크를 비롯한 역대 이스라엘 총리,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 각국 외교관과 유엔의 중동 특사 같은 국제 정치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 오간 일급비밀 메모와 이제껏 공개되지 않은 서신, 정상들의 대화록과 전화 통화 녹취록까지. 전문가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현지 팔레스타인인의 삶과 이스라엘 점령 체제의 구축 ? 심화 과정, 그리고 뉴욕 ㆍ 오슬로 ㆍ 카이로 등지에서 펼쳐진 국제 외교의 현장이 생생하게 재구성된다.
오늘날의 서아시아(중동)는 1967년 6일전쟁으로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 승리해 요르단 강 서안, 골란고원,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를 점령하고, 이른바 ‘문명개화한 점령’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 50년에 걸친 세월을 통해 이스라엘은 ‘점령의 속성은 야만일 뿐 개화되는 문명이 아님’을 증명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스라엘 전 국방장관 모셰 다얀조차 만일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가운데 어느 한 나라로부터 점령 통치를 받아야 한다면 과연 자신의 조국을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과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탄압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을 ‘아랍의 침략에 시달리는 피해자’에서 ‘무자비한 점령군’으로 바꿔놓았다.
점령 종식을 목표로 한 외교적 시도들은 길고 지난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분쟁을 종식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여러 번 눈앞에서 놓쳐버렸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이스라엘 총리 바라크에게 휘둘렸고, 아라파트는 협상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요인 암살 작전을 벌였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자살 폭탄을 이스라엘 시내에 터뜨렸다.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되고, 2005년에는 가자 지구에서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일방적 군 철수를 단행했다. 2012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옵서버 ‘국가(state)’로 격상했다. 하지만 지금도 팔레스타인 땅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에 종속되어 있다.
점령 체제는 두 겹으로 된 원과 비슷하다. 안쪽 원은 점령군과 피점령민이 일상적으로 어깨를 스치는 영역, 바깥쪽 원은 현장에서 얼마간 떨어져서 점령을 논하는, 정치가 ㆍ 외교관 ㆍ 외교 사절들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안쪽 원과 바깥쪽 원은 밀접하게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책은 점령 치하에 놓인 팔레스타인의 일상생활사와 국제 외교 현장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뤄진다. ‘1부 첫 10년, 1967~1977―팔레스타인, 납치된 신부’에서는 1967년 6월 이스라엘군이 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 지구,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한 과정부터 이들 네 지역에서 처음 10년 동안 이스라엘 점령 체제가 구축되어간 과정이 체계적으로 펼쳐진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군과 싸운 아랍측 상대국은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다(이라크군도 동맹군으로 참전했다). 전쟁 결과 요르단은 서안 지구를 잃고, 이집트는 가자 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시리아는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에 빼앗겼다. 그중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은 전통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의 영토였기에 이스라엘인들도 언젠가는 반환해야 할 땅으로 여겼다. 그러나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는 1948년 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결과 요르단과 이집트가 병합했던 곳으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야훼 하느님이 약속한 ‘유대와 사마리아’ 땅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마을 자체를 없애버리면서 이 땅에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가능한 한 좁은 구역에 몰아넣었다.
‘납치된 신부’라는 말은 1967년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모셰 다얀의 말에서 따왔다. 모셰 다얀은 팔레스타인 여성 시인 파드와 투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는 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납치된 여자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그와 결혼하고 싶지도 않지만 일단 아이들이 태어나면 남자는 아이들의 아버지, 여자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때가 되면 이제 납치는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 당신네 민족은 우리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지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에게 우리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본문 109쪽)

‘2부 두 번째 10년, 1977~1987―기댈 곳은 없다’에서는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점령 체제에 저항해 일으킨 봉기, 인티파다의 기습적인 시작과 끝을 살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6일전쟁 전에 팔레스타인 땅의 주인 노릇을 했던 요르단 왕이나 이집트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고향을 되찾아주길 기대했지만, 곧 스스로 돌멩이를 들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1979년 아랍의 강국인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했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든 희망을 잃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구나 싶습니다. …… 우리의 대표로 여겼던 PLO도 무엇 하나 성취하지 못했습니다.”(가자 지구 전 민정장관 라샤드 알샤와, 본문 272쪽)
“이제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이제 문제는 [점령지] 밖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하느냐는 것입니다. 외부 사람들은 내부 사람들의 ‘메아리’가 되어야 합니다.”(PLO 간부 야세르 아베드 랍보, 본문 272쪽)

‘3부 전쟁과 외교, 1987~2007―잃어버린 기회’에서는 1987년에서 2007년까지 20년을 다뤘다. 이때는 점령의 ‘안쪽 원’과 ‘바깥쪽 원’이 극적으로 뒤얽혔던 시기다. 1차 인티파다와 2차 인티파다가 무서운 기세로 지속되는 한편, 이를 계기로 마드리드 회의, 오슬로 협상, 1-2차 캠프데이비드 협상 등 점령 종식과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 협상이 여러 차례 좌절을 거듭하며 진행되었다. 저자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진정 비극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해 양측이 고비마다 놓쳐버린 기회들을 짚어본다.

저자는 이 책을 “완결이 아닌 ‘진행 중인 저술’로 여긴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이 종식되는 날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계속해서 이 책에 덧붙이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2014년에 나온 원서는 1967년부터 2007년까지를 다뤘지만, 2016년에 나온 한국어판에는 말미에 2007년부터 2014년 전후까지의 상황이 (비교적 간략하게나마) 보태졌다.
서두에는 책의 개요와 성격, 집필 의도를 밝힌 서문과 함께, 점령지를 둘러싼 역학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 지도 7장, 이스라엘군 장교 출신으로서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역사에 천착하게 된 계기를 밝힌 ‘개인적인 일러두기’, 점령 개념 논쟁을 정리한 ‘점령에 관한 일러두기’가 실려 있다.

책속으로 추가
일부 주민은 멀리 떠나지 않고 들판에서 야영을 하며 마을로 돌아갈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골란고원에 주둔했던 한 이스라엘 병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마을 밖 들판에서 수백 명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우리를 지켜보며 ……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티마 알알리는 주민들이 마을 가까이에 머무르려고 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추수 때문이죠……. [추수하러] 돌아가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골란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6월 18일, 이스라엘군 지역 사령관 슈무엘 아드몬 대령은 골란고원 전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하는 군령을 내렸다. 군령에 따르면 떠난 사람 누구도 이 지역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를 어길 경우 최고 5년 구금형에 처해진다. (169~170쪽)

10월 3일 이스라엘군은 “[점령지인 골란고원으로] 넘어오려고 하던 한 아랍 여성과 아이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체포를 시도했지만 놓쳤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민간인을 향해 발포한 사실은 검열 당국에 의해 보도나 발표가 금지되었다. 반면 이스라엘군이 골란고원에서 무장한 민간인이나 무장조직 전투원과 마주친 사건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가까스로 몸을 숨기며 고향 집을 찾아온 골란 사람들 상당수는 이제 돌아갈 집이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이 집을 떠난 사이에 이스라엘 군대는 서둘러 마을 전체를 싹 쓸어버렸던 것이다. (171쪽)

1972년 초 샤론의 군대는 이 지역을 정리할 셈으로 군사 작전을 펼쳤다.
먼저 ‘안보상의 이유’를 내세워, 베두인족이 경작하던 광대한 땅에 울타리를 둘렀다. 그다음 울타리 안으로 진입해 그곳에 거주하던 베두인족 1540가구를 물리적으로 몰아냈다.
잔혹한 축출 작전이었다. 가옥은 완전히 파괴되고, 과일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갔다. 밭에 물을 대거나 양 떼에게 먹이려고 베두인족이 파놓은 우물은 전부 메워졌다. 쫓겨난 사람들 대부분은 봉쇄된 구역 인근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 가끔 울타리를 넘어가 밭을 경작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대법원에 탄원했다. 법정에서 이스라엘군은 베두인족을 추방하기로 결정한 이유, 그리고 라피아 평원을 시나이반도와 가자 지구 사이의 완충 지대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적극 변론했다. 1973년 5월, 판사들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라피아 평원을 완충 지대로 만들어야 할 정당한 사유를 군이 최대한 성실하게 제기했음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 이 문제에 관한 한 군인들의 의견이 탄원자들의 소견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결국 탄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두인족은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 땅에는 새로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섰다. (190쪽)

이 협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일부 미국 관리들이 ‘기겁할 정도’라고 표현한, 미국의 비밀 원조 약속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에서 퇴진하는 대가로 받은 것이 백지 수표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준이라 할 만했다.
미국은 군사 장비와 방위용 설비 등을 (매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서) 이스라엘에 ‘지속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원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영구적인 대규모 군사?재정 지원을 의미하며,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이스라엘의 군사적 필요를 충족시켜줄 비상 대책으로서, F-15 전투기처럼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를 제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굳건히 지켜주겠다는 약속이었다. (204쪽)

부역(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협력’)이란 비단 이스라엘 점령 통치뿐 아니라 모든 점령 체제의 주요한 특징이다. 인티파다 이전에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회유해서 탄탄한 정보망을 구축해놓았다.
돈 때문에 점령 통치에 협력한 사람도 있지만, 헤어진 가족의 귀국 허가, 운전면허, 우물을 파거나 건물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허가를 받는 대가로 협력한 사람도 있고, 이스라엘 정보부가 민감한 정보를 쥐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한 사람도 있었다. 부역자는 항상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두라 출신 팔레스타인 언론인 칼리드 아마이레는 이렇게 말했다.
“부역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암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점령 체제의 가장 나쁘고 가장 끔찍한 부산물이다. 부역자에 대한 집단 증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이유는 부역자들의 존재가 팔레스타인 사회에 공포심을 퍼뜨리고 의심과 분열을 증폭했기 때문이다. 한 팔레스타인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밀고자의 존재를 의식했다. 모두가 밀고자 이야기를 했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하는 것도 꺼렸다. 밀고자는 어디에나 있다고 여겨졌다. …… 내가 뭔가를 말하면 그 말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전해지고, 나는 잡혀가서 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UNLU는 점령군에 협력할 경우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고, 적발된 자는 엄하게 처벌한다고 선포했다. 통계를 보면 1988년 초부터 1989년 중반까지 40명이 넘는 부역자가 살해되었다. 군중에게 살해된 경우도 있고, 특수한 집행자가 처형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실상은 많은 사람이 부역자로 오인을 받아서, 또는 정치적 동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을 산 탓에 죽임을 당했다. (284~285쪽)

이스라엘 측은 몇몇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을 거치지 않고 정착촌끼리 오갈 수 있도록 우회 도로를 건설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회 도로가 생기면서 유대인 정착민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밀집 지역을 통과하지 않는 우회 도로가 생겨 유대인 정착민이 전보다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게 되자, 정착촌 인구가 대폭 늘면서 결과적으로 이 기간에 정착촌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자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위해 새로 정착촌을 건설할 더 넓은 토지와 새 우회 도로?팔레스타인 사람은 사용할 수 없는 유대인 정착민 전용 도로망?를 건설할 땅이 필요해졌다. 필요한 토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서 거둬들였다.
이리하여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서안 주민들의 생활 터전은 도시나 마을 단위로 동떨어진 채, 새로 들어선 복잡한 도로망과 정착촌, 새로 유입된 수많은 정착민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었다.
이스라엘 점령 체제가 종식되기는커녕 더 깊숙해졌던 것이다. (344~345쪽)

물론 총리는 시리아와 정식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데 따른 전략적 이익을 잘 알았다. 그렇지만 일이 성사되더라도 자신이 열심히 싸웠으며 골란고원을 손쉽게 양보하지는 않았다는 인식을 이스라엘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워싱턴에 도착한 순간부터 자신이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 그리고 되도록 시간을 끌어서 협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줄 기회를 찾았다. (387쪽)

클린턴은 아라파트를 만나기에 앞서 바라크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선의의 표시로 이스라엘이 구금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들을 풀어준다면 아라파트에게 정상회담에 나설 의사가 어느 정도 있는지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일종의 압력을 넣었다.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문제는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언제나 민감한 사안이었으며, 그들의 석방은 언제나 최우선 과제였다.
바라크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860명 중 단 세 명만을 석방했다. 차라리 단 한 명도 풀어주지 않는 편이 나았을 만큼 아라파트에게 모욕적인 일이었다. (408~409쪽)

“우리 하마스는 자살 공격이야말로 …… 팔레스타인 사람이 점령에 항거해 꺼내 보일 수 있는 카드라고 생각합니다. …… 어차피 우리에게는 아파치 헬리콥터 같은 무기가 없으니까 …… 그래서 우리 나름의 방법을 취하는 겁니다.”
정밀 타격이 가능한 인간 유도 미사일인 자살 폭탄은 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일상생활을 마비시키며, 전체 이스라엘인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린다. 알아크사 인티파다의 초기 2년 동안 팔레스타인은 무려 145명이나 되는 자살 폭파범을 이스라엘로 보냈다. 첫 번째 인티파다의 상징이 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라면, 알아크사 인티파다를 상징하는 것은 자살 폭파범이었다. (496쪽)

가자 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 1톤짜리 거대한 폭탄은 셰하데흐는 물론이고 무고한 사람 14명의 목숨까지 앗아 갔다. 희생된 사람 중에는 셰하데흐의 딸과 부인(벤엘리에제르는 “그의 부인 역시 테러리스트였다고 알고 있어요”라고 필자에게 말했다)도 있었다.
무고한 인명 피해가 났는데도 공군 총사령관 단 할루츠 장군은 아무런 후회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전투기를 몰았던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군, 오늘 밤에는 편히 잘 수 있네……, 물론 나도……. 제군의 임무 수행은 완벽했네……, 아주 완벽했어.”
이 작전이 전쟁범죄의 구성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국제법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다만 그런 엄청난 위력을 지닌 폭탄을 인구 밀집 지역에 투하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판단력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520~521쪽)

국제사법재판소는 2004년 권고 의견을 내면서, 장벽 건설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 내 주민들의 이동할 자유를 침해하여 ……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일할 권리, 건강을 추구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는 물론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까지 침해한다”고 비난하고, 따라서 “이스라엘은 즉각 장벽 건설을 중단하고 …… 장벽 건설을 목적으로 개인이나 법인에게서 수용한 토지와 과수원, 올리브 농장 등 부동산을 돌려줄 의무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530~5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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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추천사
자료에 관한 일러두기
개인적인 일러두기
서문
‘점령’에 관한 일러두기
지도

1부 | 첫 10년, 1967~1977

1장 아브라함의 땅, 서안 지구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변화 | 다얀의 ‘보이지 않는 점령’ 방침 | 일방통행 다리 | 난민 작전 | 교과서 싸움 | 점령지 관리 지침 | 게릴라 축출 | 유대인 정착 | 알론 계획 대 다얀 계획 | 토지 수탈의 합법화 | 헤브론 사태 | 국왕을 설득하라 | 식민지화 | PLO, 약하게나마 살아 있는 불씨 | 점령의 맨얼굴

2장 가시투성이 장미, 가자 지구
군정과 추방 | 가자 반란 분쇄 | 가자 지구의 식민지화

3장 착한 가난뱅이의 나라, 골란고원
인종 청소, 남겨진 드루즈파 | 지리?사회적 변형 | 저항과 전쟁

4장 이집트에 반환되어야 할 땅, 시나이반도
식민 정책 | 전쟁과 타협

2부 | 두 번째 10년, 1977~1987

5장 평화협상의 첫발을 뗀 리쿠드당 집권기
빗장을 푼 라바트 회담 | 캠프데이비드 회담 | 캠프데이비드협정 이행 과정 | 봄의 봉기 | 골란 주민의 시민권 거부 투쟁 | 레바논 침공과 마을연맹의 종말

6장 1987년 검은 12월
봉기에 나선 사람들 264 | 이스라엘의 검은 12월

3부 | 전쟁과 외교, 1987~2007

7장 인티파다
UNLU(전국봉기지도자연합) | 이스라엘군의 반격? 구속, 고문, 통행금지, 마을 봉쇄, 가옥 파괴 | 아부 지하드 암살 | 요르단 국왕의 정치적 결별 선언 |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 | 골절 정책과 샤미르의 평화 계획

8장 걸프 전 마드리드 오슬로, 1991~1995
마드리드 평화회의 | 협상 테이블 복귀 | 역사적인 악수 | 제2단계 오슬로협정?실행 방안 | 평화의 노래

9장 잃어버린 기회, 1995~1999
터널 폭동 | 헤브론 분할 | 하르 호마 | 분쟁의 격화 | 이스라엘 야당과 팔레스타인의 공모

10장 골란 먼저, 1999~2000
다시 시작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대화 | 알아사드의 호의 | 참담한 결말

11장 2차 캠프데이비드 협상, 2000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 | 불길한 전조

12장 알아크사 인티파다, 2000~2001
빌 클린턴의 최후 시도 | 잃어버린 기회

13장 샤론과 아라파트, 2001~2004
끊이지 않는 유혈 사태 | 방호벽 작전 | 가자 지구의 전쟁범죄? | 로드맵 | 아리엘 샤론의 장벽 | 폭력의 악순환으로 돌아가다

14장 일방적 철수의 대가, 2004~2007
샤론의 보상 요구 | 아라파트 독살설? | 일방적인 철수, 그러나 끝나지 않은 점령 | 다섯 번째 10년에 들어선 점령 체제

지은이 후기―다섯 번째 10년의 한복판에서
가자 봉쇄 | 화약고 폭발 | 미래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아랍-이스라엘 분쟁 연표
참고문헌
후주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