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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신들 (페미니즘의 신화적 근원)
한국의 여신들 (페미니즘의 신화적 근원)
저자 : 김화경
출판사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출판년 : 2021
ISBN : 9791155504826

책소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한국 여신신화의 문화사회학

가부장제가 성립되기 이전에
여성들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사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유화부인, 자청비, 바리공주(바리데기), 마고할미, 설문대할망... 이 여신들의 이름이 지금껏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일찍이 유학(儒學)에 바탕을 둔 합리적 사유가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서 여성 중심 신화의 문헌 정착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이는 간난고초의 세월을 보내던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들 사이에서 이어져온 여신신화가 한국 여성의 끈질긴 생명력을 반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 시간 우리 신화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경로로 전승되어온 여신신화들을 대상으로 삼아, 이 여신들의 원형(archetype)은 과연 누구였으며, 그에 대한 신앙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전개되어왔는지 추적해나간다. 저자의 통찰 아래 재설정된 여러 여신의 유형 및 범주들-지모신(地母神), 창세의 여신, 성모신(聖母神), 농경 관련 여신, 사랑과 갈등의 여신, 이계(異界)의 여신, 제의 속 여신 등-과 그 연구방법론들-기능주의, 상호해명법, 문화사적 방법론 등-은 한국 여신신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재구성을 모색한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여신신화는 단지 가부장제에 의해 변형ㆍ변개되어서만 존재하는 부차적 서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외연에 의탁할 필요 없는, 한국의 페미니즘을 길어 올릴 신화적 근원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열아홉 번째 책.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의 문제의식
여신신화가 처해온 사회 환경

인류 역사가 긴 가부장제의 사회를 거치는 동안, 여신신화들은 많은 부분 변형되고 왜곡되었고, 신격에도 변화가 초래되었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죽음과 불행이 여성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판도라 이야기나 이브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판도라가 금단의 항아리를 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불행이 존재했으며, 이브가 무화과 열매를 따서 먹었기 때문에 인류가 낙원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은 인간 세상에 비극을 가져온 장본인을 공히 여성으로 지목한다.
한국에서는 죽음과 불행이 여성들로 말미암아 초래되었다는 신화가 발견되고 있지는 않지만, 여신들의 권위가 추락하고 비하된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죽어가는 부모를 살려내기 위해서 저승 세계로 여행하여 그 약을 구해온다는 ‘바리공주 신화’에서 그녀가 저승 여행의 주체가 되고, 또 무당들의 조상인 무조신(巫祖神)이 된다는 이야기는 여신의 권위가 실추되어 그에 얽힌 신화도 변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조선시대에는 지배 이데올로기 정립의 기반이 된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성의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었다. 이때 정착된 여성 경시 풍조는 지속되어, 이후 외부와 내부의 대립이 남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대치되고, 대외 활동은 오로지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지기도 했다. 여성의 반경은 위축되었고, 여신신화도 자연히 마모되고 변개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신신화의 전거, 지모신

하지만 이러한 차별적 환경과 여건 하에서도 여신신화들은 면면히 계승되어 왔다. 여신신화는 그 자체로 ‘전승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거니와, 이는 남성 지배의 사회에서도 여성과 여신격은 나름대로 역할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얽힌 이야기들이 수이 사라질 수 없었다는 증거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여신신화들에 대한 총체적 정리의 시도다. 일찍이 우리 민족에게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지모신(地母神)신앙이 성립되었으며, 그에 따라 지모신 숭배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여신신화들이 창출되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 연구는 출발한다.
저자는 이러한 지모신 숭배의 흔적을 한국 고대사회의 혈거신(穴居神)신앙에서 찾는다. 혈거신신앙이란 굴속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되는 여신을 숭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단군 신화에서 곰이 굴속에서 일정한 금기 기간을 지켰으므로, 웅녀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 고구려에서 수신(禭神)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 유화 이야기도 여기에 속한다. 특히 이런 혈거신신앙은 우묵하게 들어간 곳을 대지의 자궁으로 여기던, 농경민문화에 바탕을 둔 신화적 사유에서 비롯한다.


창세의 여신들이 모권제 사회를 증명하다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천지 분리형의 설문대할망 신화나 일부 국토 창성형의 마고할미 신화가 여신을 주인공으로 한 창세신화였다는 견해는 익히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이들 자료가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는 여신신앙이 가부장제가 성립되어 남신신앙이 확립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여신의 역사에 근거를 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종교사 측면에서 여신을 숭배하는 신앙이 남신을 숭배하는 신앙보다 앞선다는 의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모신신앙의 여신이 남신보다 먼저 성립되었다는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면서, 제주도의 설문대할망(거구의 여신) 신화가 중국의 반고(거구의 남신) 신화보다 먼저 창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모권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로 전환되면서 남신 위주의 신화로 변환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전자가 후자보다 먼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의 여신신화가 일방적으로 중국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여산신의 사상을 이어온 성모와 신모

또한 저자는 산신 숭배의 한 형태인 성모(聖母)사상을 비중 있게 조명한다. 이는 한국의 산신신앙은 지모신사상이 산악숭배로 확대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으로, 전국 산의 이름에 여성을 뜻하는 모산(母山)과 모악(母岳)이 많고, 또 산에 얽힌 이야기 가운데 성모와 신모(神母)가 있는 것은 고대 이래로 여산신(女山神)의 사상을 이어온 것이라는 견해가 바탕이 되었다.
특히 이런 성모전승은 남성과 접촉 없이 아이를 잉태하는 성처녀신화의 범주에 들어가곤 한다. 이는 고대사회에서 생성되기 시작한 신분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녀 간 성적 교접으로 출생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지배계층의 시조는 처녀가 잉태하는 신화소를 차용해 우월성과 신성성을 확보하고,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했다. 즉, 지배자는 조상의 신비한 탄생담을 보유함으로써 자가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신라의 성모신앙은 이러한 신화적 사유에서 창출된 이야기를 배경으로, 시조를 낳은 여신을 숭배하는 사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성모신앙을 신라 고유의 문화로 본다.

생산의 상징인 농경의 여신들

농경의 시작은 여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이 사냥을 위해 바깥에 나간 사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들판을 돌아다니던 여자들은 땅에 떨어진 곡식 씨앗이 다시 싹을 틔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땅에 심어 경작하는 법을 알게 된다. 씨앗을 뿌리고 곡식을 수확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대지의 생산성을 돕는 상징적 존재로 여성이 조명 받는 계기가 이와 같다. 신화학자들은 이렇게 곡식 재배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씨앗을 얻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그 결과 다양한 곡물기원신화들이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우리네 지모신신앙도 농경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곡물기원신화들을 창출해갔다. 가장 일찍 문헌에 정착된 사례가 『구삼국사』에 기록된 유화 이야기다. 이는 하늘로부터 곡식 씨앗을 훔쳐온다는 프로메테우스형(Prometheus Type) 신화의 한국적 변용으로, 유화가 아들인 주몽에게 곡식 씨앗을 준다는 신화소와 비둘기가 잊었던 보리 씨앗을 가져다준다는 수락형(穂落型)이 복합된 것이다. 자청비가 천상세계의 난리를 평정해준 대가로 곡식 씨앗을 얻어왔다는 제주도 ‘세경 본풀이’는 프로메테우스형 신화의 전형적 사례이며, 제주도의 ‘문전 본풀이’와 ‘차사 본풀이’ 등은 사람 시체에서 곡식 씨앗이나 다른 생물을 얻는다는 하이누벨레형(Hainuwele Type) 신화 유형에 속한다. 이들 신화에서 여신은 주인공이거나 중요한 등장인물로 농경과 생산 활동을 상징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사랑하고 갈등하는 여신들의 사회학

한국 여신신화들을 고찰하는 가운데 저자가 각별히 주목한 것이 ‘서귀포 본향당 본풀이’와 ‘세경 본풀이’다. 여성의 일방적 순종을 강요하던 조선 사회의 가치관과 완전히 상반된 내용의 신화였다. 여기에 제시된 여성상이야말로 재래의 그것과 완벽하게 배치되었다. 전자의 여주인공(지산국)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형부까지 빼앗는 불륜도 마다하지 않았고, 후자의 주인공(자청비) 역시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남장(男裝)하거나 부모를 속이기도 했다. 자기 사랑을 위해 기존의 도덕과 가치에 과감하게 맞서는 캐릭터의 여성들이었다. 이로써 조선 사회라고 해서 반드시 여성에게 맹종만 강요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해볼 수 있었다.
아울러 서귀포 본향당 본풀이가 마을 간 신앙권(信仰圈)과 통혼권(通婚圈)을 규제하는 생활 전범이었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세경 본풀이 역시 딸만 있는 집안의 가권(家權) 승계 방안과 처가거주혼(妻家居住婚)이란 색다른 혼인제도를 제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해석은 한국 여신신화가 당대 나름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들이다.


이계를 들고 나는 여신들

‘이계(異界)’ 방문 유형의 신화도 고찰했다. 여신신화 연구에서 새롭게 도입해본 ‘이계’ 개념은 선행 연구들에 편재하지만, 그 정의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이에 이 책에서는 ‘영혼이 가는 타계(他界)’와 ‘인간이 사는 공간 경계 너머의 공간’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이계의 하나인 저승세계를 ‘방문하는’ 이야기로 저자는 ‘바리공주 신화’와 ‘초공 본풀이’를 분석한다. 전자는 바리공주가 서천 서역국에 가서 약수를 가져와 죽었던 부모를 살려냄으로써 만신(萬神)의 몸주가 되는 과정을 담는다. 저자는 서천 서역국이란 저승세계를 다녀오는 바리공주가 바로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후자의 저승 여행기 또한 노가단풍 자지맹왕의 아들 3형제가 어머니가 갇혀 있는 삼천천 제석궁을 다녀와서 삼시왕이 되는 이야기와 유정승의 딸 유씨 부인이 삼시왕이 있는 곳에 잡혀갔다 돌아와서 심방이 되는 이야기의 중층 구조로 되어 있다. 두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이 텍스트에서도 저승 여행은 심방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
이계의 하나인 이상향에서 온 가락국 허황옥(許黃玉)과 탐라국 세 왕녀 그리고 고려 용녀(龍女)의 외래신화도 고찰했다. 이러한 이계 ‘출자(出自)의’ 여신신화는 인간이 사는 공간 바깥의 세계에서 새로운 문물을 가지고 들어온 존재들이 기존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담는다. 여기서 내방(來訪)의 여성이 지배계층의 배우자로 정착한다는 점은 이때가 이미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가 확립된 사회임을 암시한다.


제의 속 여신들

마지막으로 제의와 관련을 가지는 여신신화들을 조명한다. 강릉 단오굿의 여서낭 신화와 공주 웅신제(熊神祭)의 연기(緣起)신화가 그 대상이다. 단오굿은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풍작을 기원하는 파종제로, 저자는 이런 농경의례에서 남녀 간의 성적 결합을 통해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다는 의례학파의 견해를 수용해, 남서낭과 여서낭의 합사(合祀)가 그러한 유사 성적 행위였을 것이란 견해를 제시한다. 공주의 웅신사(熊神祠)를 중심으로 거행되던 웅신제는 그 연원이 신라시대에 닿아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봄가을로 제를 올린 기록이 남아 있다. 인근에서 발견된 곰상(像)은 이 제의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저자는 이 웅신제의 연기담과 유사한 형태의 이야기가 아무르강가에 사는 퉁구스족 일파인 비라르족과 에벤크족들 사이에서 전승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리하여 비록 구전된 자료들이기는 하지만, 이들 이야기의 상사성(相似性)을 근거로 같은 계통의 자료라고 상정해본다. 이는 단군 신화에 나오는 곰 숭배사상과 고아시아족과의 관련설을 언급했던 고대사학자 김정배의 주장에 대한 문제 제기다. 이러한 전제가 타당하다면, 웅진의 곰나루 전설은 단군 신화를 가진 고조선이 고아시아족 계통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퉁구스족 계통의 민족에 의해 세워졌음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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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책머리에

제1장 들어가며

제2장 지모신신앙과 여신
지모신신앙의 성립|혈거신 숭배|대지 숭배와 출현신화|요약

제3장 창세신화와 여신
지모신과 창세신화|설문대할망 설화|마고할미 설화|요약

제4장 산악신앙과 성모
산악신앙의 성립|성처녀로서의 성모|성모신 기능의 확장|성모신의 세속화|성모신앙권 설정|요약

제5장 농경의 기원과 여신
농경과 여성|복합형 신화|프로메테우스형 신화|하이누벨레형 신화|요약

제6장 사랑과 갈등의 여신
억제된 여성의 삶|자매간의 애증|사랑을 이루기 위한 열정|요약

제7장 이계 방문의 여신
이계의 상정|바리공주 신화|초공 본풀이|요약

제8장 이계 출자의 여신
상상의 공간|허황옥의 외래|세 왕녀의 외래|용녀 외래|요약

제9장 제의와 여신
제의와 신화|여서낭 신화|곰나루 여신|요약

제10장 맺음말

주ㆍ참고문헌ㆍ찾아보기ㆍ수록 도판 크레디트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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