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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비범성
선의 비범성
저자 : 김요환^황선우
출판사 : 킹덤북스
출판년 : 2021
ISBN : 9791158862350

책소개

이 책은 세속 철학과 일반 인문학을 신뢰하는 현대인들에게 진리의 유일성을 제시하며 복음(福音)으로 설득하고 초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초대장 봉투와 같다.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 ‘선(善)’을 찾아보기가 참으로 힘들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선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발견한 선은 바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책은 선을 따라 살기로 결단한 그리스도인들이 문화, 경제, 정치, 법, 도덕, 윤리,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나아가야 할 비범한 삶의 태도를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적인 삶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에는 젊은 감리교 교역자와 청년 기독교 작가가 만나서, ‘악(惡)’이 일상화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선’을 발견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 젊은이들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선의 실현 가능성을 외치고 있다. 이런 도전이야말로 실로 비범한 것이다.
원성웅(옥토교회 담임목사, 前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감독)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로마서 3장 10절

이 책의 저자 나(김요환)는 담임 목회를 하고 있는 개신교 성직자이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포교를 목적으로 이 책을 저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와 이념들에 대해 ‘진리로 저항하는 것’이다. 나와 공저자 황선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그러나 순전히 청년의 반골기질이 발동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리에 대한 순종기질이 발동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리에 위배되는 것에 대해 저항적인 글이 있다. 보편적인 것들에 대한 반항, 당연시 통용되던 주장들에 대한 반론, 그리고 이미 익숙해져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항거. 이러한 것이 우리가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우리 주변에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어느 공무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즉 악은 지극히 평범하다. ‘악의 평범성’은 어느 누구도 쉽게 악의 길에 편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선은 어떠한가? 선도 평범한가? 선한 일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가? 이웃을 구하기 위해 차도에 뛰어든 어느 청년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보육원과 요양원에 익명으로 기부하는 기부천사 이야기… 등등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우리는 선(善)도 우리 주변에 놓여있는 평범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것이 왜 착각입니까?” 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곧장 이렇게 묻겠다. “당신은 과연 선합니까?” 과연 선의 평범성을 떳떳이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일정부분 선한 사람은 있을 수 있겠으나, 완전히 선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죄가 전혀 없는 완벽한 의인이 있다면, 그 인물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 비범한 사람이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은 죄가 전혀 없는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이거나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일 것이다.

황선우는 글을 쓰는 문화인으로서 접근한다.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규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그는 문화인이지만 자신이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 아님을 고백한다. 보통 문화·예술계 종사자라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인 창조자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자신은 그저 창조자의 물건을 전달하는 차원에서 작품을 양산할 뿐임을 고백한다.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문화인들이 스스로 창조자가 되려 할 때, 그는 절대주의적 질서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달자가 되려 한다.

그는 ‘상대주의는 애초에 논리적으로 모순임’을 줄곧 전해왔다. 상대주의가 말한 대로 세상에 정답이 없고 틀린 것이 없다면, 상대주의 그 자체도 정답이 아니어야 하고 절대주의 역시 틀린 게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상대주의는 스스로 정답이라 하고 절대주의는 틀렸다고 한다. 이에 그는 상대주의로 흩어져 있는 모순된 주장들을 절대주의적 질서로 모으기 위해 책 집필에 참여한다. 선한 문화는 없고 모든 것은 그저 다를 뿐이라 하는 상대주의적 주장에 대해 반대하며, 악한 문화를 깎아내리고 선한 문화를 양산해내려 글을 쓴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의인은 없다!” 따라서 선을 행하는 사람도 없다.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선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사실은 잘못된 주장임에도 ‘가치 존중’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절대적 기준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자신의 소신과 주관에 달렸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선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라고 외친다. 이와 같은 상대주의적 주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善)도 악(惡)처럼 평범할 것이라고 속인다.

그러나 여기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 선은 비범한 것이다. 선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절대적 기준이 없이 자신의 주관과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은 선이 아니다. 또한, 인류 보편적인 견해라며 다수의 입장에 편승하는 것도 역시나 선이 아니다. 선은 그렇게 시시하지 않다. 선은 특별하고 비범하다. 이와 같은 주장에 근거를 제시하고자 나와 황선우는 관용적인 말로 익히 퍼져있는 주장들에 대해 거침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일상적인 인사, 익숙한 잔소리, 매번 강조되는 표어들, 이 모두는 선의 비범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머리말, 2021년 1월 1일 김요환 & 황선우
[예스24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ㆍ추천의 글 - 4
원성웅(옥토교회 담임목사, 前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감독)
박호종(The Cross Church 담임목사)
이정훈(울산대학교 사회과학부 법학과 교수, 엘정책연구원장 법학박사)
노승현(前 기독일보 국장)

ㆍ머리말 - 14

1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왜?! 19
사회·문화 속의 비범성
1) “보편적 세계관을 넘어 진리의 세계관으로” 20
2) “‘문화상대주의’라는 미혹” 39

2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어째서?! 257
정치·경제 속의 비범성
1) “인류 번영을 위한 인생 경영” 58
2) “지켜야 할 것, 바꿔야 할 것” 85

3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고? 과연?! 2101
법·정의 속의 비범성
1) “정의를 위한 공의” 102
2) “왜 구조를 탓하나?” 129

4부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고? 정말?! 145
도덕·윤리 속의 비범성
1) “더 나은 삶을 위한 더 선한 삶” 146
2) “계획에 따른 윤리관” 174

5부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진짜?! 191
종교 속의 비범성
1) “보상이 아닌 보증으로서의 종교” 192
2) “백문일답(百問一答)” 226

ㆍ맺는말 - 245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