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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저자 : 슬라보예 지젝
출판사 : 북하우스
출판년 : 2021
ISBN : 9791164051304

책소개

바이러스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2020년 6월, 『팬데믹 패닉』으로 전례 없는 위기의 규모와 의미를 발 빠르게 진단했던 지젝이 초기의 혼란이 지나고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지연되고 있는 출구의 시간대를 기록했다. 이 책은 문화 전쟁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마스크 거부 운동에서부터 출발해 수확되지 않은 작물이 썩어가고 있는 미국의 농장과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고 외치는 시위 현장을 거쳐,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필수 노동자들과 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기업, ‘비대면’ 사회를 지향하며 정부가 내놓는 새로운 뉴딜 정책과 일론 머스크의 당황스러운 돼지 실험 등이 가져올 전망을 비판하며 팬데믹 시대의 복잡한 풍경을 대담하게 그려낸다. 포퓰리즘과 음모론, 그리고 코로나 피로감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를 전방위에서 추동하고 있는 오늘, 지젝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를 써내려가며 위기의 본질을 이해할 결정적인 사유의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바이러스만 통제할 수 있다면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 정신화된 혹은 디지털화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포스트휴먼의 미래도 결코 우리의 전망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지젝의 통찰은 코로나 시대에 대한 가장 철저한 반성문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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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다가올 더 큰 역경 앞에서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현실이 품은 환상을 꿰뚫는 유일무이한 시선
위기의 철학자, 지젝이 다시 돌아왔다!
영구적인 감염병의 시대, 철학의 쓸모는 무엇인가

『팬데믹 패닉』 이후 1년, 정지되었던 시간의 의미를 되짚다

“팬데믹은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_본문 중에서

2019년 12월에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2년차를 맞이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고, 아직도 팬데믹은 쉽게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2020년 6월, 『팬데믹 패닉』으로 전례 없는 위기의 규모와 의미를 발 빠르게 진단했던 지젝이 초기의 혼란이 지나고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지연되고 있는 출구의 시간대를 기록했다. 전작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현실을 강조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드러나는 인종과 계급 차별을 부각하고, 그 위기의 징후를 지구온난화, 환경 파괴, 삶의 디지털화, 새로운 포퓰리즘의 등장과 정신건강의 문제로까지 확대하여 포착하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점차적으로 번질 전 지구적 위기(‘퍼펙트 스톰’)를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바꾼 충격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지젝의 통찰은 마치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우리로 하여금 지난 2년의 시간을 돌이켜보게 한다. 그리고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코로나바이러스 피로감’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세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그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서 팬데믹을 더 철저하게 사유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평화롭게 살지도, 손쉽게 죽지도 못한 채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상한 삶
출구 없는 시간의 우울증적 구조를 파헤치다

“백신에 거는 희망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뒤섞인 지금,
우리는 끝없이 늦춰지는 신경쇠약 속에 살아간다.”_본문 중에서

출구의 시간대가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2020년 봄만 해도 정부는 2주가량의 봉쇄나 다른 방역 조치가 끝나면 상황은 나아질 거라 말했다. 그해 여름이 지나면서 2주는 두 달이 되고, 또 1년이 되었다. 2021년 현재,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을 시작하며 낙관적인 분위기에 부풀었던 세계가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다시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지젝은 팬데믹 초기의 충격을 지배한 감정은 두려움이었지만 뚜렷한 전망이 제시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우울증으로 넘어갔다고 진단한다. 명확한 위협이 있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면, 우울증은 우리의 욕망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이러한 우울증적 반응은 팬데믹이 불러온 심리적 충격의 일부일 뿐이다.
전면 봉쇄와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와중에 독일의 광장에서, 영국의 해변에서,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정부의 방역 조치에 맞서는 시위가 있었다. 우파 포퓰리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과장되었다는 음모론을 설파하고, 일부 급진 좌파는 정부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자국민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한다며 팬데믹에 맞서 싸우기를 거부했다. 지젝은 지난 1년 동안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를 지배한 “삶은 지속된다”는 구호,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열망을 일종의 정신병적 징후, 집단적 광기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징후의 결말은 지젝에게 ‘세계의 또 다른 종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연을 가린다는 이유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 아감벤의 시(“사랑이 폐지되었다”)는 지젝에게 와서 정확히 이렇게 비틀어진다. “의료가 폐지되었다 / 자유라는 명분으로 / 이제 자유가 폐지될 것이다. / 생명이 폐지되었다 / 인류라는 명분으로 / 이제 인류가 폐지될 것이다.”

영구적인 감염병과 음모론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젝이 건네는 붉은 알약
팬데믹의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 모두가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다.
무지에의 의지라는 유혹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기꺼이 팬데믹을 사유할 것인가?.”_본문 중에서

지젝은 “왜 철학자가 작물 수확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며 책의 포문을 연다. 비좁은 막사에서 잠을 자는 농장 노동자 수백 명이 한꺼번에 집단 감염되어 수확하지 못한 작물들이 여기저기서 썩고 있는 사태, “숨을 못 쉬겠다”는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에 공명하듯 백인보다 더 높은 확률로 바이러스에 희생되는 흑인들, 재택근무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며 새로운 착취의 형태로 등장하는 현상, 봉쇄 조치로 목숨을 걸고 있을 할 것인가, 일을 하지 않고 죽을 것인가의 선택에 놓인 필수 영역의 노동자들 등 바이러스의 창궐과 함께 표면화된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의료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동력과 분리할 수 없는 팬데믹의 본질을 드러낸다. 팬데믹은 작물 수확처럼 철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제조차 인간의 실존과 직결된 “속속들이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 지젝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팬데믹에 맞서 ‘포스트코로나’를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디지털의 힘을 빌려 ‘비접촉 사회’ 혹은 ‘비대면 사회’로 나아가자는 정치권의 새로운 뉴딜 정책은 그 답이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출구를 모색하는 것은 마치 ‘거리두기’가 팬데믹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과거에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 존재들을 집단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뇌’에 접속시켜 언어를 거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일론 머스크의 프로젝트의 허구성 역시 드러난다. 지젝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정신까지 디지털화하려는 팬데믹 시대의 열망은 자본주의 이후를 사고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함을 드러낼 뿐이라 말한다.
바이러스만 통제할 수 있다면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 정신화된 혹은 디지털화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포스트휴먼의 미래도 결국 우리의 전망이 될 수 없다. 지젝이 제시하는 포스트코로나 정치학은 오늘의 위기가 수십 년 전부터 지속해온 문제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핵심 전망이기도 한 ‘전시 공산주의’는 따라서 바이러스에 맞선 인류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착취 체제에 맞선 인류 공통의 싸움이다. 우리가 되찾으려는 ‘일상’이 차별과 착취가 온존하는 끔찍한 현실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먼저 모든 것이 달라진 듯 보이지만 결코 달라지지 않는 차별의 시스템에 문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우리는 세계를 너무 빠르게 바꾸려 했다
이제 그 변화를 새롭게 따져볼 시간이다
‘뉴노멀’과 ‘비대면 사회’를 넘어서는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급진적 제언!

“낡은 세계는 끝이 났지만
‘비접촉’의 미래가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아니며,
세계의 또 다른 종말은 가능하다.”_본문 중에서

‘알지 않으려는 의지’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결론 아닌) 결론에서 지젝은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이때, 바이러스의 작동방식을 충분히 ‘알고자 하는 의지’보다 오히려 그에 관해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는 의지가 확산되는 역설에 주목한다. 지식이 우리의 일상적 삶에 제한을 가하려 할 경우, 사람들이 ‘무지無知에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팬데믹을 ‘알고자 한다는 것’은 그 위기의 복잡한 총체성에 눈을 뜬다는 의미다. 즉, 팬데믹에 맞서는 싸움이 포퓰리즘과 음모론에 맞서고, 인종차별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환경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작업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따라서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상상을 지배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안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
집단 면역이라는 희망이 좌절되고,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에서조차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팬데믹 이후에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재난이 우리에게 훨씬 더 근본적인 조치들을 요구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쩌면 지젝의 예언처럼 진짜 위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고, 우리는 더 큰 재앙에 앞서서 일종의 ‘총연습’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과 동일한 시스템이 매끄럽게 기능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인지를 묻는 지젝의 제언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가 ‘코로나 피로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젝의 통찰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써내려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우리에게 위기의 징후를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새로운 형태의 삶을 상상하게 하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선사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2년의 시간을 진지하게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코로나 시대에 대한 가장 철저한 반성문처럼 읽히는 이 책에 담긴 지젝의 주장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낡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건설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로 나서야만 한다. 이 건설 작업은 의학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속속들이 정치적 문제다. 우리는 사회적 삶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발명해야만 한다.”_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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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서문 팬데믹의 삶을 노래하자

1부 팬데믹 시대의 증상들
1장 왜 철학자에게 작물 수확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는가
2장 코로나바이러스, 지구온난화, 착취: 동일한 투쟁
3장 동상 파괴는 왜 급진적이지 않은가
4장 아버지…… 혹은 그보다 못한
5장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섹스
6장 돼지와 인간의 (시원찮은) 멋진 신세계
7장 접촉 금지의 미래는 필요없다
8장 천국에서의 죽음

2부 급진적 정치학의 미래
9장 그레타와 버니는 어디에 있나?
10장 맞아요, 붉은 알약…… 그런데 어떤 것?
11장 수행하기 어려운 단순한 것들
12장 전시 공산주의
13장 민주주의의 한계
14장 현재의 정세: 우리의 선택

(결론 아닌) 결론 알지 않으려는 의지
부록 권력, 허상, 그리고 외설에 관한 네 가지 성찰
옮긴이 해설 팬데믹을 다시 사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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