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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저자 : 로웅 웅
출판사 : 평화를품은책
출판년 : 2019
ISBN : 9791185928197

책소개

어린 소녀의 눈으로 생생하게 담아낸 캄보디아 킬링필드!

이 책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킬링필드의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측면까지 세밀하게 그려내어 역사가 채 담아내기 힘든 국가폭력에 희생된 개인의 내면과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회고록이다. 특히 영리하고 당돌하면서도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까닭에 더 아프고 참혹하지만,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서사적 긴장감, 그리고 최악의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서도 꺾이지 않는 어린 소녀의 용기와 저항이 솔직하고 진실한 내면묘사에 힘입어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출판사 서평

캄보디아 킬링필드에 관한 역사의 증언인 동시에 문학적인 성취를 이룬 회고록
천혜의 자연환경과 세계 7대 불가사의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인 앙코르와트로 대표되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닌 캄보디아.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캄보디아 곳곳에는 20세기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라 불리는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가 짙게 배어 있다.
1975년 4월, 급진 공산주의 혁명단체인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친미 론 놀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뒤, 새로운 공산주의 농민사회를 이룩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또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공무원, 정치인, 군인 들을 처형하고,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든 국민을 개조한다는 구실로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2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주 도중 처형되거나 기아와 질병으로 숨지고, 농촌으로 옮겨진 이들은 집단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농촌에서도 혹독한 노동과 굶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크메르루주 정권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약 4년에 걸쳐 저지른 대학살을 ‘킬링필드’라 한다. 킬링필드는 ‘죽음의 들판’을 뜻하는 말 그대로 이때 학살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묻은 집단 매장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집단 매장한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2만여 곳에 이른다. 특히 수도 프놈펜을 비롯한 캄퐁참, 시엠레아프, 푸르사트 등 도시에 킬링필드가 집중돼 있는데,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면서 베트남 국경에 인접한 캄보디아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투하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산 사람마저 집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6백만 명의 유태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는 지난 수십 년간 소설과 회고록, 역사책 등을 통해, 특히 ‘쉰들러 리스트’나 ‘소피의 선택’처럼 작품성이 뛰어난 소설들이 영화화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불과 45년 전에 일어난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세계인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 역사를 제대로 그려낸 예술작품도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1984년에 제작된 ‘킬링필드’라는 영화로 “멀리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잔인한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지게 되었지만, 서구인의 시각에서 많은 역사적 진실이 가려지고 미국의 역사적 책임의 문제를 비껴간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출판된 로웅 웅의 회고록 『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원제 First They Killed My Father)은 캄보디아인의 관점에서, 그것도 실제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중요한 역사적 기억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출간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모으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20세기 말부터 문학적인 회고록이 새로운 창작예술 장르로 등장하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 책은 특히 일반인이 잘 모르는 킬링필드의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측면까지 세밀하게 그려내어 역사가 채 담아내기 힘든 국가폭력에 희생된 개인의 내면과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회고록이다. 영리하고 당돌하면서도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까닭에 더 아프고 참혹하지만,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서사적 긴장감, 그리고 최악의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서도 꺾이지 않는 어린 소녀의 용기와 저항이 솔직하고 진실한 내면묘사에 힘입어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은 2000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01년 아시아·태평양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성인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이웃 공동체 독서 프로그램 교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2017년엔 안젤리나 졸리가 이 책을 원작으로 감독을 맡아 영화로 만들었다. 190개 나라에서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이 영화의 각본은 로웅 웅과 안젤리나 졸리가 함께 집필했다.

이 책은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시제로 쓰였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과거시제로 쓰면 거리를 두고 전쟁과 학살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고 집필하기도 수월하지만, 킬링필드 시기에 영문도 모른 채 크메르루주군에게 가족을 잃고 행복한 생활을 빼앗겼을 때 자신이 경험했던 혼란스러움과 상실감, 외로움, 공포, 분노에 찬 심정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대부분의 국가폭력과 대량학살이 그렇듯이 킬링필드 역시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역사적 책임과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참혹한 조국의 역사와 맞물린 아픈 가족사를 쓰면서, “가족이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할 때 느꼈던 그 분노와 타는 듯한 통증과 갈가리 찢긴 심정을 풀어내면서, 나는 그 고통에 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평화를 갈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해 눈감은 사람은 현재를 볼 수 없다. 비인간적인 일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다시금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고 한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이나 제주4·3 사건, 5·18민주화운동 같은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가 캄보디아 킬링필드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킬링필드의 서막, 도시를 비우고 집을 떠나다
로웅은 호기심 많고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수다쟁이지만 영리하고 당차며 또래에 비해 조숙한 여자아이다. 고위 공무원이며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아빠와 그 덕에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아름다운 엄마, 점잖고 관대한 큰오빠, 여자에게 인기 짱인 활달한 작은오빠, 새침하고 멋쟁이인 큰언니, 원숭이처럼 흉내를 잘 내는 민첩한 막내 오빠, 그리고 순종적이고 유순한 작은언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세 살배기 여동생, 이렇게 대가족의 여섯째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부유하게 구김살 없이 살았다. 그런데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한 그날 이후 로웅의 평화로운 나날은 산산이 부서지고 온 가족이 지옥 같은 삶 속으로 떨어진다.
로웅이 갓 다섯 살 되던 1975년 4월 17일, 친미 군부정권이자 부패한 론 놀 정권과 수년간 내전을 벌여온 크메르루주가 론 놀 정권을 몰아내고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로웅의 가족을 비롯한 2백만 명의 프놈펜 시민들은 단 사흘 만에 도시 밖으로 쫓겨난다.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가 도시와 도시인들을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든 악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캄보디아를 새로운 공산주의 농민사회로 만들기 위해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됐다. 또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공무원, 정치인, 군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이른바 ‘킬링필드’의 서막이었다.
로웅은 미군이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거라며 사흘간 프놈펜을 비워야 한다는 크메르루주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머지않아 그들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 도중 처형되거나 기아와 질병으로 숨지고, 농촌으로 옮겨간 사람들도 집단 농장에서 강제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수없이 죽어간 것이다.

선과 악의 갈등을 넘어선 굶주림의 고통
이레에 걸친 고된 행군 끝에 엄마의 고향이자 외삼촌들이 살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 다다른 로웅 가족은 전직 고위 공무원이었던 아빠의 신분과 프놈펜에서의 부유했던 삶을 숨기고 농민으로 숨죽여 살아가지만, 아빠의 신분이 탄로날까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크랑트루오프에서 안룽트모르로, 로레아프로 끊임없이 옮겨가야 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가족과 떨어져 노동수용소에서 혹사당해야 했고, 큰언니 또한 10대들의 노동수용소인 콩차랏으로 끌려간다.
무엇보다 어린 로웅을 괴롭히는 건 처절한 굶주림이었다. 음식 배급량이 계속 줄어드는 만큼 마을 인구 또한 점점 줄어든다. 한 달 넘게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몸은 기형적으로 변해가고, 하루에 할당된 노동량은 힘에 겨운데 멀건 국물이 대부분인 죽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다.

나는 절대 한꺼번에 죽을 먹지 않는다. 행여나 우리 가족이 내 것을 덜어갈세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음미하며 떠먹는다. 그릇 바닥에 남은 세 숟가락쯤 되는 밥알을 맨 마지막에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알을 느릿느릿 씹어 먹다가 혹 밥알이 땅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냉큼 주워 먹는다. 죽을 다 먹으면 내일까지 기다려야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릇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여덟 개밖에 남지 않은 밥알을 세면서 나는 속으로 울음을 터뜨린다. 여덟 알이 나한테 남은 전부라니! 밥알을 한꺼번에 삼켜 없애고 싶지 않아서 한 알씩 건져 천천히 씹으며 그 맛을 음미한다. 입 안에서 눈물과 밥알이 섞인다. 여덟 알을 모두 먹고 나서 아직 자기 몫의 죽을 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다. _본문 141쪽

로웅은 자나 깨나 음식 생각뿐이다. 꿈속에서도 음식에 너무 탐욕을 부려서 가족들과도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다. 급기야 어느 날은 한밤중에 일어나 아빠가 어렵사리 구해 온 쌀을 훔쳐 먹으며 죄의식을 느끼고, 점점 더 자신 속에 틀어박힌다. “굶주림의 고통은 언제나 그렇게 존재하며” 끝없이 로웅을 괴롭힌다. 몇 달 뒤, 새침하면서도 어린 로웅을 살뜰히 챙겨주던 큰언니마저 노동수용소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독이 든 음식을 잘못 먹고 세상을 떠난다.

그들은 가장 먼저 아버지를 죽였다
전 정부의 지지자였던 로웅의 아빠는 마침내 정체가 발각돼 크메르루주에게 끌려가 몇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울면서 매일 계단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지만 로웅은 아빠가 죽임을 당했음을 안다.

내 머릿속에선 온통 죽음과 처형 장면만 떠오른다. 나는 군인들이 어떻게 죄수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커다란 무덤에 던지는지 수없이 들었다. 그들이 어떻게 포로를 고문하고 참수하는지, 또 귀한 탄약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도끼로 두개골을 내려친다는 말도 들었다. 아빠 생각이, 아빠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그들이 아빠를 고문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산 채로 묻히는 죄수들도 있지만, 아빠가 그런 죽임을 당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아빠 몸에 흙이 쌓이고, 아빠가 숨을 쉬려고 목을 할퀴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빠가 빨리 죽음을 맞았다고 믿어야 한다. 그들이 아빠를 고통스럽게 죽이지 않았다고 말이다. 아빠, 제발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자 호흡이 빨라진다.
“그만 생각해. 안 그러면 너도 죽을 거야.”
나는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래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_본문 185쪽

로웅은 그 커다란 구덩이 안에서 아빠가 다른 사람들 위에 누워 고통스럽게 숨을 쉬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인이 아빠를 불쌍히 여겨 곧바로 총을 쏘았을 거라고 믿는다. 이제까지는 아빠 덕분에 가족의 생존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앞으로는 아빠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때부터 로웅은 생존의 이유로 크메르루주와 폴 포트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키운다. 아빠가 없는 삶은 힘들지만 계속 살아나가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엄마는 굳세고 강인한 여인으로 거듭나고, 막내 오빠는 가장의 책임을 떠맡으며, 로웅 또한 목숨을 유지할 온갖 방법을 찾아내며 굳건하게 하루하루 버텨나간다.

소년병이 되다
마을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온 가족이 사라지는 이상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크메르루주가 자기들이 죽인 사람들의 아이들과 생존자들이 언젠가 복수를 할까 두려워 온 가족을 몰살하는 것이다. 로웅네 가족도 그대로 함께 지내다가는 언젠가 그들에게 정체가 발각될지 몰라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엄마는 아직 아기나 다름없는 막냇동생만 놔두고 삼남매에게 떠날 것을 재촉한다.
“셋 다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해. 킴은 남쪽으로 가렴. 초우는 북쪽으로 가고, 로웅은 동쪽으로 가거라. 노동수용소가 나올 때까지 걸어. 고아라고 하면 받아줄 거야. 이름도 바꿔. 너희끼리도 새 이름을 알려주지 마. 너희가 누군지 절대로 들켜선 안 돼.”
엄마의 당부와 달리 로웅은 막내 오빠와 헤어져 작은언니와 함께 노동수용소로 가서 고아 행세를 하며 집단 노동을 하고 선전교육을 받는다. 누구에게도 놀림 받지 않고 당차게 맞서는 로웅을 알아본 여자 감독관이 로웅을 훈련수용소의 소년병으로 보내는 바람에 로웅은 언니와 헤어져 완전히 혼자가 된다. 로웅은 훈련수용소에서 베트남의 침략에 대비해 어린이 병사로 훈련받으며 크메르루주와 폴 포트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간다.

계속되는 시련, 그리고 마침내 크메르루주를 벗어나다
식량배급이 줄어들자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간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공복통에 시달리던 로웅은 가까스로 찾아간 병원에서 온 가족과 만난다. 각자 아파서 병원에 왔다가 재회한 것이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여섯 달 뒤 로웅은 엄마와 막냇동생이 군인들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다. 로웅의 머릿속에 엄마와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군인들을 따라 논을 지나고 흔들리는 야자수들을 지나 마을 언저리에 있는 들판으로 간다. 인적이 드문 그곳에서 군인들이 엄마와 마을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한다. 서늘한 진흙 속으로 빠져들면서 엄마와 게악은 서로 꽉 붙잡는다. 엄마는 게악을 품에 꼭 껴안는다. (……) 군인 하나가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는 곧장 엄마 쪽으로 걸어간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엄마의 눈이 커진다.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친다. 군인이 게악의 어깨를 잡는다. 두 사람이 내지르는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에 울려퍼진다.
하지만 군인들은 서로 헤어지지 않으려 꼭 부둥켜안은 두 사람을 억지로 떼어낸다. 두 사람의 손끝만 닿아 있다가 다음 순간 그마저 끊어지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울며 사정한다. 갑자기 ‘탕탕탕!’ 총소리가 나면서 몸에 박힌 총알들이 비명을 잠재워버린다.
게악은 진흙탕에 얼굴을 박고 고꾸라져 있는 엄마에게 달려간다. 게악은 이제 겨우 여섯 살이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를 부르며 어깨를 흔든다. 엄마의 뺨과 귀를 만지고, 진흙탕에 묻힌 얼굴을 들어올리려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만 역부족이다. 눈을 비비자 엄마의 피가 온통 게악의 얼굴에 묻어난다. 주먹으로 엄마의 등을 팡팡 때리며 깨우려 하지만 엄마는 가버렸다. 엄마의 머리를 붙들고 숨 쉴 새도 없이 울부짖는다. 한 군인이 어두운 얼굴로 총을 든다. 잠시 뒤 게악도 조용해진다. _본문 277~278쪽

엄마와 동생마저 잃은 뒤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로 쳐들어와 폭격을 퍼붓자, 로웅은 수용소를 달아나 헤매다가 다행히도 작은언니와 막내 오빠를 만나 함께 피란을 떠난다. 푸르사트시의 난민촌에서 자신들을 볼봐줄 가정을 찾아 떠돌며 수양가족에게 갖은 멸시와 구박을 당하고 베트남 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기도 하지만, 로웅은 특유의 기지와 당찬 성격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큰오빠와 작은오빠를 만난다. 로웅은 다시 오빠들과 작은언니를 캄보디아에 남겨두고 큰오빠 부부와 함께 보트를 타고 태국으로 탈출해서 5개월간 태국 난민촌에 머문 뒤, 미국 교회의 후원을 받아 버몬트주로 이주한다. 15년 후, 로웅은 캄보디아에 남겨진 형제들을 찾아 고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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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정보

작가의 말 11

프놈펜 1975년 4월 13
웅 가족 1975년 4월 23
압취(押取) 1975년 4월 17일 39
소개(疏開) 1975년 4월 49
7일간의 도정(道程) 1975년 4월 57
크랑트루옵 1975년 4월 73
대기 장소 1975년 7월 83
안룽트모르 1975년 7월 92
로레아프 1975년 11월 101
노동수용소 1976년 1월 121
새해 1976년 4월 138
케아브 언니 1976년 8월 161
아빠 1976년 12월 175
엄마의 리틀 멍키 1977년 4월 196
집을 떠나다 1977년 5월 208
어린 병사들 1977년 8월 223
닭 한 마리와 금 1977년 11월 248
마지막 가족 모임 1978년 5월 260
무너지는 벽 1978년 11월 271
요운이 쳐들어오다 1979년 1월 282
첫 번째 수양가족 1979년 1월 299
날아다니는 총알 1979년 2월 315
크메르루주의 반격 1979년 2월 332
처형 1979년 3월 346
밧뎅으로 돌아가다 1979년 4월 355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1979년 10월 369
람싱 난민촌 1980년 2월 386
에필로그 396

감사의말 402
부록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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