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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저자 : 라인홀드 니버
출판사 : 종문화사
출판년 : 2017
ISBN : 9791187141297

책소개

인간의 본성에 관해 지나치게 비관적인 관점 혹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을 조장하지 않는 문화적·종교적·도덕적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사회가 가장 잘 번성한다. 정치에서 도덕적 감상주의나 도덕적 비관주의는 전체주의적 정권을 조장한다. 한편에서는 정부의 권력을 점검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부추기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갈등을 일으키며, 경쟁을 부추기는 이해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정부 상태를 제지할 있는 것은 오직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의 마지막 장에서 다룬 세계 공동체의 통합에 관한 기본적 가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일부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공산주의자들과 합의점에 도달하는데 실패했다. 이것은 한 공동체에서 경합하는 이익들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이상론자들이 일관되게 가정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냉전”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핵전쟁 의존의 절대적 불가능성에 의해서 열린 새로운 차원의 역사적 시점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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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어둠의 세력에 맞서 빛의 자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민주주의 진단!

라인홀드 니버는 명실상부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사회윤리학자, 신학자, 변증가로 손꼽힌다. 니버는 개인으로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특정 집단에 속하게 되면 이기주의자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로 명성을 얻었다. 그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고대철학과 근대철학, 19세기의 낭만주의, 마르크스의 유물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인간의 본성과 운명 I, II』을 내놓으면서 니버는 사상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기독교적 인간이해와 사회윤리를 정치체제와 구조적으로 연관시킨 마지막 저서 『인간의 본성과 공동체들』와 함께, 그의 책들은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필독서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도 그의 천재성에 대한 증거로서 빠질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기독교 현실주의자로서 그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니버는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에서 1·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와 민주주의의 전망에 대해 기독교 윤리학을 토대로 냉철하게 분석한다. 책의 제목인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은 누가복음 16:8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으로, 니버는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척도와 권위를 따르는 자들을 “빛의 자녀들”로, 자신의 이익 외에는 그 어떤 기준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을 “어둠의 자녀들”로 규정한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어둠의 자녀들”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러한 “어둠의 자녀들”처럼 슬기롭게 자신들의 이상을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구조화하고 보편화하는 데에 실패한 “빛의 자녀들”의 어리석음 때문이기도 하다. “빛의 자녀들”은 보편적인 가치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이기심을 통제하거나 포기할 의도를 갖추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이기심의 충동적인 힘을 과소평가하거나 이성의 통제력을 과대평가하는 등 순진한 낙관주의에 자주 빠지게 된다. 물론 민주주의는 “빛의 자녀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둠의 자녀들”은 민주주의 체제와 제도와 문화 내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일 없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구를 은밀하게 채우며 치명적 해악에 대한 가능성을 언제나 남겨두었다. 그리고 점차 “어둠의 자녀들”의 자기이익이 민주주의 체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구조화될 때, 민주주의는 그 근간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니버는 반세기도 더 전에 예견했다.
니버가 “어둠의 자녀들”의 예로 드는 도덕적 냉소주의는 오늘날 이미 너무 자연스러운 경향이어서 니버의 통찰력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의 이익보다 상위의 기준이나 권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물론 니버는 도덕적 냉소주의의 경향이 “빛의 자녀들”에게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불가능하고, ‘모든 역사란 결국 타협’이라고 말한다. 즉, “빛의 자녀들은 어둠의 자녀들이 가진 지혜로 무장해야 한다. 하지만 어둠의 자녀들이 가진 악의(惡意)로부터는 자유롭게 남아있어야 한다.”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에 대해 고심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끝까지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한 교두보들을 마련해간 니버가 우리 “빛의 자녀들”에게 어떤 통찰들과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다.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 2판 서문]
현대 역사의 흐름이 너무 빨라서, 15년 전에 1판으로 출판했던 이 정치철학의 책이 언급했던 내용들을 앞지르는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고, 때로는 이 책이 언급했던 내용들을 진부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건들이 이 책의 중심 주장을 반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중심 주장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 지나치게 비관적인 관점 혹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을 조장하지 않는 문화적·종교적·도덕적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사회가 가장 잘 번성한다. 정치에서 도덕적 감상주의나 도덕적 비관주의는 전체주의적 정권을 조장한다. 한편에서는 정부의 권력을 점검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부추기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갈등을 일으키며, 경쟁을 부추기는 이해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무정부 상태를 제지할 있는 것은 오직 절대적인 정치적 권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15년 전에 명백히 밝혔던 우발적인 판단들과 시대에 뒤떨어진 판단들은 개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중국은 거대한 권력의 “가능태”가 아니라 현실태이다. 미국은 고립주의와 책임주의 사이에서 동요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우리가 마주한 확고한 권력은 고립주의를 향하는 우리의 충동에 종결을 고했다. 우리 미국은 이제 비(非)공산권 세계에서 거대한 패권국이다. 우리의 과제는 권력에 수반되는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무고한 시절부터 국가적 삶을 특징지어 왔던 도덕적 감상주의나 도덕적 가식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책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권력이 어떤 특별히 도덕적인 국가에 의해서 행사되고 있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도덕적 고유성이 우리의 우방이나 적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다. 모든 역사적 덕행(德行)들과 성과들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애매모호하며 단편적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룬 세계 공동체의 통합에 관한 기본적 가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일부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공산주의자들과 합의점에 도달하는데 실패했다. 이것은 한 공동체에서 경합하는 이익들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이상론자들이 일관되게 가정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냉전”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핵전쟁 의존의 절대적 불가능성에 의해서 열린 새로운 차원의 역사적 시점에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전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차원의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고서 마지막 장에서 말했던 것은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단호한 적(敵)과 더불어 무난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솔직하게 고백컨대 내가 15년 전에는, 실전(實戰)은 예방하겠지만 세계 공동체로 향하는 길은 어렵게 만드는 핵(核) 교착상태에 내재된 창조적인 가능성과 파괴적인 가능성을 예측할 만큼 충분한 선견지명을 갖추지 못했다. 만약 우리가 재앙을 피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로지 현재의 국제적 긴장이 만들어낸 끔찍한 협곡 위로 천천히 자라고 있는 공동체의 세포조직과 상호신뢰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다.

1959년 10월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

목차정보

2판 서문
1판 서문
추천서
1장. 빛의 자녀들들과 어둠의 자녀들들
2장. 개인과 공동체
3장. 공동체와 재산
4장. 민주적인 관용과 공동체의 단체들
5장. 세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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